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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26. 2023

1988, 나이키, JUST DO IT

1988년의 나이키는 'Just do it'에 큰 기대가 없었다.


1984년을 배경에 둔 <에어>에서는 전 세계가 아는 그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이 만들어진 일화를 언급하는 대사가 나온다. 사실 이건 완전 뻥이다. 그 일화가 뻥이라는 게 아니라 1984년에는 나이키 직원이 아니라 나이키 직원 할아비도 ‘Just do it’에 관해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왜냐하면 ‘Just do it’이 나이키 슬로건으로 처음 쓰인 건 1988년이었기 때문이다.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이 처음 언급된 건 1987년, 나이키가 처음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기획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에어로빅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리복과 경쟁하기 위해 나이키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과 청소년을 비롯해 운동에 큰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도 나이키 운동화를 구입하고 싶게 만들자는 전략을 기획했고, 이를 대변할 강력한 캠페인 슬로건을 원했다.


당시 나이키의 캠페인을 담당한 광고대행사 ‘위덴&케네디’의 최고 크리에이터 댄 위덴은 일상적으로 스포츠 문화를 확산시킬 태그 라인을 찾고 있었던 나이키에 이 슬로건을 제안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이 문구는 유타주에서 무고한 남녀 2명을 살해한 뒤 사형수가 된 게리 길모어가 사형대에 오르기 직전에 뱉은 마지막 말 ‘Let’s do it’에서 착안된 것이다. 위덴이 이 사실을 처음 발설한 건 다큐멘터리 감독 더그 프레이가 연출한 <아트 앤 카피>(2009)를 통해서였다.

만약 이 슬로건이 요즘 시대에 활용됐다가 그 출처가 알려진다면 SNS를 통해 일찍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것이다. 사형수가 내뱉은 말 따위가 대중을 위한 캠페인 슬로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1987년은 그런 걱정이 지금보단 덜한 시대였다. 정보가 빠르게 퍼지지도 않았고, 그런 사실 자체를 일찍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 떠나서 나이키 내부에서 이 슬로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특히 나이키의 창립자이자 당시 CEO였던 필 나이트의 반응이 그야말로 뚱했다. 댄 위덴의 적극적인 설득이 없었다면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3어절이 됐을지도 모른다. 캠페인에 관계된 나이키 임직원들의 반응도 고만고만했다. ‘그 광고와 결혼한 게 아니니까, 다음 라운드에서 그만 두면 되지’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잘 알다시피 ‘Just do it’은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사라진다 해도 없어지지 않을 듯한 상징적인 언어가 됐다. 


‘Just do it’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건 1988년 7월 1일에 처음 송출된 TV 광고를 통해서였다. 이른 아침 짧은 숏팬츠 운동복만 입고 대교 위에서 조깅을 하는 80세 노인 월트 스택은 밝고 건강한 미소로 지나는 차에 손을 흔들기도 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딱히 신발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기분 좋게 달릴 뿐이다. 그리고 끝에서 떠오르는 'Just do it'.

실제로 월트 스택은 조깅과 마라톤을 즐겼으며 평생 동안 10만 km 이상을 달렸다고 한다. 단순히 모델을 섭외한 게 아니라 캠페인을 대변할 수 있는 인생을 빌린 셈이었다. 그리고 ‘Just do it’, 이 광고는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스포츠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이 슬로건에 반응했고, ‘아멘’처럼 ‘Just do it’을 발음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순간 달리지 않아도 달리는 사람이 됐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 뒤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 역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1995년에는 이 메시지를 더욱 능동적으로 발전시켰다. ‘If you let me play’라는 슬로건은 여성을 스포츠 세계의 일원으로 초대한다는 명목으로 나이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라는 이름에서 빌린 나이키도 뒤늦게 절묘한 감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모든 건 1988년 당시 그들이 도전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일지도 모른다. 엄격하게 실패 가능성을 통제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실패할 수 있지만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입장에서 던지는 패는 그만큼 유연하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앞서 뛰는 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트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1988년의 나이키는 더 나은 미래가 필요했고, 적어도 당장 뭐든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의 기미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나이키는 그걸 알았다. 그렇게 승리의 이름이 됐다.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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