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희사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May 08. 2023

'비프' 결국 사랑하기 위해 '성난 사람들'

넷플릭스 '비프(성난 사람들)'는 투뿔 등급의 기름진 성취를 선사한다.

‘소고기? 음식에 관한 작품인가?’ <비프(Beef)>라는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아니다. 이것은 음식에 관한 작품이 아니다. ‘Beef’라는 영단어는 우리에게 소고기라는 의미로 익숙하지만 ‘싸움’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된다고 한다.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비프>가 <성난 사람들>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된 이유다. 한국어 제목은 조금 밋밋하게 느껴져서 이 칼럼에서는 원제로 명명하겠다. 그리고 <비프>는 제목처럼 싸움에서 시작된다.


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힐 뻔한 대니(스티븐 연)는 기분 나쁘게 경적을 울리더니 창 밖으로 중지를 세우고 멀어지는 해당 차량의 운전자에게 분노하고 살벌한 추격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그 차를 멈춰 세우지 못한 대니는 번호판의 차량번호라도 달달 외운 뒤 차량 주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집주소를 알아내 나름대로 통쾌한 복수를 한다. 하지만 잘못 건드린 것 같다. 에이미(앨리 웡)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복수가 복수로 이어지고, 길거리에서 벌어진 사소한 해프닝은 더 이상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점입가경의 복수전으로 이어진다. 기이한 건 분노로 엮인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의 삶에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각기 처지는 다르지만 삶의 결핍을 느끼는 대니와 에이미는 분노를 계기로 만나 거듭 반목하며 특수한 관계를 맺는다. 두 사람의 갈등은 실질적으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내면에 깃든 필연적인 혼란을 맞닥뜨리게 만든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셔오고 싶지만 자기 앞가림하기도 급급한 대니는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향한 원망을 품고 있다. 유명한 예술가 집안 남편과 살며 자신이 키운 사업체의 권리를 비싸게 넘기고 부자가 될 팔자를 목전에 두고 있는 에이미는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남들은 알지 못하는 어떤 결핍에 사로잡혀 있다. 


대니와 에이미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적수이자 적자다. 자신의 원망과 결핍을 분출시키고 그럼으로써 온전히 솔직한 내가 될 수 있는 완벽한 대상이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억눌린 마음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는 이를 서로 만난 셈이다. 그러니까 이건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 꼬이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별한 러브 스토리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기회란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기회만큼 희박하다. 나를 포장할 필요 없이, 나의 추함까지 동원해 상대를 해치려 드는 마음이란 사실상 둘도 없이 솔직하게 서로를 포용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우발적인 분노에서 시작되는 1화가 놀라운 포용력으로 귀결되는 10화로 다다르는 과정은 그래서 대단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비프>는 서로를 향해 폭탄을 투하하듯 분노를 내던지는 대니와 에이미를 동양인 이민자라는 정체성에 가두지 않고 제각각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화된 존재로 그린다는 점에서 비범한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이성진이 작품 전반을 총괄하는 쇼러너를 맡은 <비프>에는 동양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계 배우들이 주요한 캐릭터 라인을 이룬 덕분에 한국어 대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한 묘미가 되는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정체성이라는 단어에 곧잘 스며드는 정형화된 연민을 요구하거나 식상한 갈등으로 빠져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캐릭터들은 동양계 미국인이고, 그에 어울리는 고민에 빠져 있거나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별력 없는 바구니 삼아 마구잡이로 담아내듯 캐릭터를 낭비하지 않는다. 저마다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고, 특별하게 혐오스럽고, 특별하게 사랑스럽다. 결국 정체성의 문제란 공통적이면서도 개별적이며 모두가 다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의 화를 내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럼으로써 정체성이라는 단어로 포괄된 다채롭고 너른 풍광을 인식하게 만든다. 드라마에도 등급을 매긴다면 투뿔 등급도 모자란, 정말 기름진 성취다.


(고려대학교에발행하는 학보 신문 <고대신문>의 '타이거살롱' 섹션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988, 나이키, JUST DO I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