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복수에 쾌감을 느끼는 현실은 정말 통쾌한 걸까?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은 지난 수년간 박연진(임지연)을 생각하며 18년간 살아왔다. 그 누구보다도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만전을 기해왔다. 찾아오고, 찾아간 인연과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원대한 복수를 완성해 줄 시나리오를 그려 나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온몸에 남겨준 연진이와 그 무리들을 곱씹으며 고대해 왔다. 연진이를 다시 만날 그 순간과 그 이후에 다다를 그 모든 순간을 마음속으로 복기해 왔다.
<더 글로리>는 집단적인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소녀가 자퇴한 뒤 어른으로 성장해 역시 어른이 된 가해자들을 찾아와 계획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처음에는 16부작은 너무 긴 호흡이 아닌가 의아했다. 하지만 막상 두 시즌에 걸쳐 공개된 16부를 모두 보고 나니 이해가 됐다. 문동은은 말한다. “복수 시작할 땐 나도 <테이큰> 같을 줄 알았지.” 복수는 밥을 차리는 것과 비슷하다. 차리는 시간은 길지만 정작 먹는 시간은 짧다. 심지어 설거지도 해야 한다.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다. 흙수저 문동은에게 복수란 자신의 생을 모두 갈아 넣어도 될까, 말까, 모를 일이다. 생계도 유지하면서 복수까지 준비한다는 건, 심지어 하나도 아닌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복수의 인과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건, 정말 긴 호흡의 설계와 인내가 필요한 서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갖 악의를 담아 장르물을 썼다”는 김은숙 작가의 말은 문동은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과 복수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것 같다. <더 글로리>를 보는 이들 가운데 문동은의 복수가 실패로 끝나길 바라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김은숙 작가 역시 그럴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쉬운 복수는 시원찮은 카타르시스를 남길 수밖에 없다. 김은숙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피해자들이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고 말하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주변인들의 2차 가해에 더 깊은 상처를 느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이건 독한 일이어야 한다. 복수라는 건 어설픈 마음으로 감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갖 악의를 품고, 그러한 악의를 상대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집념을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더 글로리>가 공개되기 이전부터 학교폭력은 동시대의 뜨거운 이슈였다. 인지도 있는 배우도,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 멤버도, 전도유망한 프로스포츠 선수도, 심지어 고위 정치인의 자식도, 뒤늦게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학교 폭력 가해자가 사회적 지위를 얻었거나 그럴 기회를 누린다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음표. 그렇다면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없는, 개인으로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저지른 학교폭력은 그냥 묻혀도 되는 만행인 걸까? <더 글로리>에서도 이와 관련한 장면이 등장한다. 문동은의 계획에 점점 내몰리는 가해자 무리는 한데 모여 상황의 심각성을 논하던 중 문동은이 자신들의 학폭 자료를 모두 모아놨다는 김연진의 말에 이사라(김히어라)가 반문한다. “학폭은 너나 위험하지. 우리 같은 일반인이 뭔 타격이 있어?”
지난 2021년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연애 중인 미혼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연인의 학교 폭력 가해 경험’ 조사를 실시했다. 연인이 학창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계속 만날 것인지, 헤어질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응답자 가운데 72.6%가 ‘헤어진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설문 응답자 중 72.6%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언어에 학교 폭력 가해자의 삶이 부합할 수 없다고 응답한 셈이다.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 이력이 있는 자가 그에 걸맞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현재를 판단하게 만드는 기준이 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소리라 발음하는 것 자체가 식상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당연하지도, 뻔하지도 않다.
<더 글로리> 이전에도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거듭 등장했다. <죄 많은 소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같은 영화나 <경이로운 소문> <인간수업> <소년심판> <3인칭 복수> 같은 드라마는 학교 폭력을 주요 소재로 다루며 시청자의 공분을 유발한다. 그중에서 <약한 영웅 Class 1>은 학교 폭력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10대 소년들의 파란만장한 연대와 갈등을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약한 영웅’이라는 제목처럼 손쉽게 피해자로 전락할 것처럼 여겨지던 소년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타고났는지 뒤늦게 형성됐는지 모를 깡다구를 무기로 소위 말하는 일진에게 대항한다. 그 과정에서 연대와 우정의 성장 서사가 곁들여지고, 소년들의 삶이 보다 입체적인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의 말미에서 주인공 소년에게 분노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넘어 학교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학생을 보호할 실력 자체가 부재한 학교 체제를 향해 광분하는 소년의 모습은 허구 밖에 자리한 실제 세계를 흔드는 일갈로 다가온다.
학교 폭력은 현실이다. 허구가 아니다. 드라마 속의 복수나 응징은 현실이 아니다. <더 글로리>를 비롯한 학교 폭력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는 수면 아래로 잠기는 문제를 다시 끌어올려줄 문제제기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 현실을 해결해 줄 처방전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문제에 연관된 모든 이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해자 학생과 그 부모와 그 선생과 그 모든 이들을 방관하거나 두둔하는 공권력이 문동은의 계획 안에 포함돼 있다는 건 결국 학교 폭력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1:1 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흥미로운 건 <더 글로리>나 <약한 영웅 Class 1> 같은 작품이 18세 이하의 나이에는 관람할 수 없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작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를 그 대상이라 할 수 있는 10대는 관람할 권한이 없다.
결국 이건 어른들의 문제다. 10대의 현실을 바탕에 둔 드라마가 그리는 악의적인 인물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향한 복수의 쾌감에 사로잡힌 어른들은 그 인과응보를 즐기는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역시나 지극히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더 글로리>가 나왔고, <약한 영웅 Class 1>이 나왔다. 더 나올 것이다. 물론 아무리 완벽한 체계를 만든다 해도 학교 폭력을 완전히 근절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드라마가 남긴 감상이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제다. 지금 우리 학교는, 아이들은 안전한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더 글로리>를 향한 열광과 공감은 결국 이 사회를 향한 물음표로 수렴해야 할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1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안에서도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살을 검색하면 바로 이런 문구를 검색할 수 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아이들도 그걸 알았으면, 우리 학교가, 우리 사회가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좋겠다. 문동은 같은 폐허로, 박연진 같은 꿈으로 자라지 않는 그런 세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