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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13. 2023

로코노미,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뉴노멀

단절 이후에 찾아온 초연결 시대, 지금은 로코노미의 시대다.

가히 초연결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모두가 다 마냥 답답하게 견디는 건 아니다. 단절의 시대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연결의 경험은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새롭게 제안하는 것만 같다. 지금은 로코노미의 시대다.


팬데믹은 우리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신속하게 생활에 자리 잡는 뉴노멀 시대에서 예전에 가능했던 것들이 불가능해지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서비스도 발 빠르게 성장했다. 직접적인 접촉을 지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모바일 접속을 통해 가능한 비대면 서비스가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가능한 것들의 가짓수가 삽시간에 늘어났다. 쉽게 말하면 방구석에 앉아서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전국의 산해진미를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로코노미(Loconomy)’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로코노미’는 ‘지역’과 ‘경제’라는 의미를 지닌 영단어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성한 신조어다. 쉽게 말하면 ‘지역 경제’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지역 경제라고 하면 지역민들의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지역 내 산업을 논할 때 보다 적절하게 여겨진다는 점에서 ‘로코노미’라는 신조어가 내포한 의미와 상반된 인상이다. 로코노미는 한 지역 내에서의 경제 효과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특정 지역 자체가 소비 영향력과 경제적 효과를 가진 브랜드로 인식되는 현상을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트렌드 리포트 ‘2022년의 소비 트렌드 주요 키워드’에서 새롭게 주목할 키워드 중 하나로 로코노미를 꼽은 바 있다. 신한카드 이용건수 기준으로 매년 1월부터 9월 사이 지역별로 고유한 개성을 가진 매장을 대상으로 이용 변화를 살펴보니 2020년에 비해 2021년에 소비 지표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러한 소비 패턴이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여겨지는 청년층 이외 세대까지 폭넓게 적용된다는 분석이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되면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에도 로코노미는 상당히 유효한 소비 키워드로 보인다.


일단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을 삼가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먼 이동 경로보다는 인접한 지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려는 심리가 주거지역 내에서 가능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욕구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동네 상권에 대한 재발견이 새로운 추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로코노미는 단순히 로컬에 국한한 소비지향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새로운 변화는 비대면 배송과 배달 산업의 급격한 발달과 정착이었다. 타 지역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대신 발품을 팔아주는 편의가 강화된 것이다. 지역 간 물류를 신속하게 연결하는 서비스를 통해 영향력 있는 상권을 가진 지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 셈이다.

실제로 신한카드 이용자들의 카드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부산, 전주, 인천 등 지역명을 상호로 활용한 가게가 많아지는 추세가 발견된다고 한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지역명 자체가 소비 호감도를 높이는 상호로서 유용하다는 판단이 시장 내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바나 다름없다. 여행이 어려워지는 시대에서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것이 꽤 유용하게 먹히는 셈이랄까. 게다가 특정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나 특정 지역의 유명한 식당에서 파는 메뉴를 직배송해 주는 산지 직송 플랫폼 이용 횟수는 2020년과 비교했을 때 전 세대에 걸쳐 40~5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한다. 직접 만나긴 어려워진 시대이지만 전달하기는 더욱 손쉬워진 아이러니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집에서 음주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게 늘어났는데 그 덕분에 동네 곳곳에 다양한 주류를 판매하는 주류판매점, 즉 보틀숍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으로 인해 술집 이용 시간에 제한이 생긴 상황에서 밖에서 어렵게 만나서 아쉽게 헤어지는 것보다 집에서 편하게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의 ‘홈술’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덕분에 그동안 주로 접할 수 있었던 맥주나 소주 같은 주류에서 벗어나 와인이나 위스키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났고 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보틀숍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발맞춰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와인과 위스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연계한 판매 서비스를 구축하고, 독점 판매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등 시장에서도 발 빠른 변화가 감지된다. 


사실 지역성 자체가 하나의 상표처럼 대두되는 현상은 지난 몇 년 사이 다양한 브랜드의 마케팅을 통해 제시된 바가 있다. 특히 고유 지역의 대표 주자를 표방하는 수제 맥주 브랜드가 대표적인데 미각을 자극하는 식음료에 대한 경험은 지역성과 가장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지방 도시마다 유명한 고유 브랜드의 빵집이 존재하고 해당 도시를 찾았을 때 일종의 성지 순례처럼 이곳을 찾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도 비슷한 일례다. 이런 현상이 지역성 고유의 개성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발달했던 것이 팬데믹 이전 상황이라면 팬데믹 이후의 로코노미는 지역성을 소비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면에서 더 나아간 현상처럼 보인다.  지방의 유명 맛집과 협업한 간편식 제품이 상당수 늘어난 것 또한 이런 현상의 근거로 유용해 보인다. 


물론 이런 현상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계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세대에 갇힌 유행이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한 전 세대적인 소비 경험이 너르게 반영됐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읽히는 만큼 로코노미라는 언어로 대두되는 소비 현상은 쉽게 꺼지는 유행이 될 거 같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함께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좀처럼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익숙해진 생활 습관을 쉽게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한편으로는 팬데믹으로 제한된 일상에서 새롭게 발견해 낸 재미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상에 눈을 뜨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함께 진정한 뉴노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로 한동안은 글로벌이 아니라 로컬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발행하는 사보 <KSOP> 매거진 2023년 3~4월호에 기고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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