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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11. 2023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캐나다 체크인'으로 만난 한국의 유기동물 실태와 가능한 변화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결코 저런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가?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이 문장은 동물을 매매하는 행위를 멈추자는 호소이자 버려진 동물을 입양하자는 권유일 것이다. 반려동물을 재산처럼 인식하는 주인 노릇을 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존중하는 반려인의 삶을 일깨우는 노력에 가깝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도 많고, 동물에 대한 인식도 예전보단 진보한 덕분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버려지는 유기동물도 많다. 


농림축산식품부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버려진 유기동물 수는 60만 마리에 이른다. 2021년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29.7%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1500만 반려동물 시대라고 하지만 한 해에 버려지는 유기동물도 10만 마리가 넘는다. 유기된 동물 중 입양되는 동물의 수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돈을 주고 사서 키우는 것도, 버리는 것도 간편하고 버려지는 동물의 수는 매년마다 좀처럼 줄지 않는데 유기동물 보호기관은 오히려 감소한다고 한다. 갈 곳이 없다. 대한민국은 살아있는 생명을 사고, 버리는 것이 참 쉬운 나라다.

일찍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순심이와 함께한 이후에도 이효리는 제주도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봉사 활동을 이어가며 유기 동물들의 대모 역할을 해왔다. tvN에서 방영한 <캐나다 체크인>은 이효리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제주의 활동가 고인숙과 함께 한국에서 캐나다로 입양 보낼 동물들을 직접 데려가는 이동봉사를 하면서 한국에서 캐나다로 입양 보낸 동물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를 담아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본래 방송과 상관없이 떠나려 했던 여정이지만 ‘의미가 있는 여정을 남겨놔야 된다’는 생각에 김태호 PD에게 연락한 이효리는 여행의 취지를 밝혔고, 김태호 PD는 방송 편성 가능성도 타진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일단 찍어 놓자는 의미로 촬영감독 한 명을 대동해 캐나다로 보냈다. 


그러니까 이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찾지 못한 반려인을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서 찾고, 그렇게 건너간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을 보겠다고 찾아가는 사람의 발걸음에 동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이 된다. 먼 이국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개들의 생기 넘치는 표정을 보는 입장에서 자연스레 안도감을 선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캐나다로 건너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개 10마리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어쩌면 일찍이 가능했던 삶을 상상해 본다. 반려인을 찾지 못한 채 보호기관에 머물고 있거나 끝내 허락된 시간이 흘러 안락사될 처지에 놓인 보이지 않는 운명들을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삶이 가능해서 다행스러운 삶보다도 끝내 갈 곳이 없어서 내몰리다 끝내 사라진 처지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녕 캐나다까지 보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한국에서는 결코 저런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가?

<캐나다 체크인>이 한국의 유기견을 캐나다로 보내는데 일조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방송을 본 이들이라면, 동시에 눈물을 글썽인 이들이라면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개들 중에서는 믹스견이 많다고 한다. 순종으로 분류되는 품종견을 선호하는 이들이 어린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다가 잡종으로 분류되는 믹스견으로 자라면 버린다는 것이다. 개 만도 못하다는 말의 무색함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결국 백 번의 주장이 아니라 한 번의 실천일 것이다. 그리고 이효리가 보여준 선한 영향력은 분명 적지 않은 마음에 가 닿을 것이다. 그러니 물론 당장 유기동물을 입양하라고 권하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맞게, 함께 살 수 있는 여건을 잘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다. 살아있는 동물을 사고, 버리는 행위의 부끄러움을 사회적 처벌로 확대하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확보하게 명문화하는데 목소리를 보태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변화해야 할 일은 변화함으로써 세상은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제발.  


(한국예탁결제원 사보 매거진 <KSDian> 2023년 봄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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