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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23. 2023

나 혼자 반려가전과 산다

이제 반려인이나 반려동물이 아닌 반려가전과 함께 사는 시대다.

반려자, 반려묘, 반려견, 반려식물 등, ‘짝이 되는 동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반려’는 인간과 유효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를 규정할 때 동원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 반려가전의 시대다. 반려가전이라니, ‘응?’ 소리가 절로 나는 이도 있겠지만 이는 현재 실생활에서 발음되는 언어다. 새삼 디스토피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달고 다니는 지금 반려가전이라는 말은 익숙하게 발음하지 않았을 뿐, 실생활에 존재하는 개념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본래 반려가전은 특수한 영역에서 발음되는 언어였다.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 섹스토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렇듯 간접적인 의미로 동원된 용어가 보다 너른 의미로 전환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계기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발간한 보고서 덕분이다. 지난 2022년 9월에 발간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기의 대중화 가능성’에 관한 보고서에는 ‘인구노령화,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라는 사회 트렌드 하에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기는 노령층뿐만 아니라 독신 가구에서 반려가전으로서의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임’이라는 분석이 명시돼 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기반의 스피커를 비롯한 AI 기기가 1인 가구의 일상에서 반려가전이라는 인식으로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바야흐로 1인 가구의 시대다. 지난 2022년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22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40.3%에 달한다고 한다. 2인 가구 비율도 23.9%로 2인 이하로 구성된 가구수가 전체 가구수의 절반을 상회한다. 세대별로 봤을 때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건 18.6%를 차지하는 70대였으며 60대와 50대 그리고 30대와 20대 순으로 많은 비율을 보였다. 1인 가구 비율에서 우위를 보이는 세대가 노인과 청년 세대로 분류되는 건 출생률 저하와 인구 노령화 현상이 가중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노령화 현상이 가중되는 사이, 늙은 사람은 늙어서, 젊은 사람은 젊어서, 그렇게 저마다 나 혼자 산다. 이렇듯 동거인도, 반려자도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이에 어울리는 서비스가 보다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듯 음성 인식 AI 스피커에게 말을 걸어보는 경험도 혼자 사는 이들에게 보다 익숙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경험이 AI 기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할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 세대보다 노년 세대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음성인 AI 기기 이용 빈도를 묻는 질문에서 자주 이용한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건 70대 이상 세대로 5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30대 이후 세대부터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음성인식 AI 기기 이용 빈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AI 기기가 유용한 반려기기로서 자연스럽게 삶에 틈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관련 업계에서도 이런 추세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돌봄 기능이 탑재된 AI 기기가 적지 않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웨이에서 출시한 아이콘2 정수기는 48시간 이상 쓰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이상 감지 신호를 스마트폰 전용앱으로 전송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2017년부터 상용화한 뒤 최신 모델에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기술이다. 에코백스에서 출시한 로봇청소기 디봇 T10옴니 역시 기기의 카메라를 스마트폰 전용앱으로 연결해 집안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하는 위치로 기기를 움직일 수 있는 무선조종 기능도 제공한다. 헬스케어 디바이스 기업 텐마인즈에서 출시한 스마트베개 모션 필로우는 사용자의 수면 상태와 건강을 체크한 데이터를 전용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지난 몇 년 사이 홀로 숨진 채 발견되는 고독사 사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5월 1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전체 인구 중 3%가량이 고독사 위험군에 해당된다고 한다. 1인 가구가 적지 않은 시대에서 고독사가 주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고독사 고위험군을 차지하는 세대가 고령층보다도 50대 중장년층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며 40대 역시 70대보다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1인 가구 고독사 문제가 단순히 특정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반려가전은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물론 반려가전의 쓸모를 1인 가구의 문제 해결 용도로만 국한해 규정할 필요는 없다. 나 혼자 사는 1인이라면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 OTT를 비롯한 홈 엔터테인먼트와 연계된 산업이 빠르게 발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프라이빗 스크린을 표방하는 LG 스탠바이미가 27인치에 불과한 작은 화면 크기에 비해 비싼 90만 원 이상의 가격대임에도 젊은 세대의 구매욕을 자극한 건 어디서든 시청이 용이한 스마트 디바이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OTT 채널 구독이 용이한 데다가 어디서든 각도 조절이 용이한 거치대가 달린 27인치 스마트 디바이스라는 점은 기존의 TV 시장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장점이었다. 그야말로 젊은 세대를 위한 반려가전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1인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서 반려가전은 일상적인 생활 용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챗GPT를 비롯한 대화형 AI 서비스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지금, 기술은 단지 인간의 편의를 해결하고 일상적 위험을 보조하는 기술적 반려 수준을 넘어 인격적인 반려 대상으로서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명한 여성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목소리와 버릇, 성격 등을 대화형 AI 서비스에 학습시킨 뒤 이를 토대로 만든 음성 챗봇으로 유료 서비스를 출시했고, 5일 만에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며 월 66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처럼 AI 음성 서비스와 사랑에 빠진 인간들의 시대가 이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기술이 인간을 반려하는 시대는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됐다. 바로 지금.


(종합광고대행사 대홍기획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웹매거진 섹션에 게재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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