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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01. 2023

다정함이 당신을 구할 것이다

인류에게 필요한 건 적자생존이 아닌 다정함이다.

단절과 분리의 시대를 가까스로 지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한 건 무엇일까? 팬데믹의 터널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연결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일찍이 그러한 깨달음이 필요했던 세계에서, 허무와 결핍을 채우는 다정함에 관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에 대하여.


스마트폰 사용 여부로 고독사를 감시한다. SF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 통신사는 한전과 함께 스마트폰 ‘잠금 해제’ 빈도를 통해 고독사 여부를 살피는 ‘고독사 예방 위한 안부 서비스’를 신설했다.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설치하고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데이터 센터를 통해 통화와 문자, 모바일 데이터 사용 여부 등의 통신데이터를 추적하고, 이 데이터가 한국전력 클라우드로 전송되면 이를 바탕으로 해당 가구의 전기 사용량과 사용 시점을 분석해 일정 기간 동안 통신과 전기 사용량이 없었는지 확인하고 예측한다. 노년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함께 고독사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그런 시대상을 발 빠르게 반영한 기술 맞춤 서비스인 것이다.


이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고독사를 돌봐야 하는 서비스가 발달한다는 건 그 시대에 방치된 고독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고독사 사망자 수는 3378명이라고 한다. 인구수 5000만 명 중에서 3000명 정도 죽은 게 무슨 대수인가 싶은 이도 있겠지만 방 안에서 혼자 죽어가는 이가 3000명이 넘고, 끝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체 방치된 시신이 3000구가 넘는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보다 대수인 게 있을까. 방치된 고독의 끝에서 맞이한 쓸쓸한 죽음을 우리는 타인의 운명으로 여기며 방관해도 되는 걸까? 과연 이 고독은 그저 어떤 이들의 인생에만 드리운 그림자인 걸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SNS상에서는 매일 같이 행복한 일상이 전시된다. 마치 모두의 매일이 저마다 활기로 가득한 세상을 사는 것만 같다. 그런데 SNS로 매일매일 들여다보게 되는 타인의 행복으로 인해 우울해지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타인의 멋진 일상을 들여다보고 동경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삶이 비루하다고 느끼며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진단명까지 생겼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첫음절을 따서 만든 신조어로 SNS가 만들어낸 우울증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반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비유적인 언어가 아니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증세다. 우리는 지금 저마다 우울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비단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다들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싸우려는 거 알아요. 나도 혼란스러워요. 하루 종일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왠지 다 내 잘못 같아요.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기발하고 기괴한 구경거리처럼 느껴지던 ‘대환장의 멀티버스’를 기이한 울림의 장으로 변환한다. 동양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소재로 세대 간 갈등과 정체성의 고민을 독창적 세계관에 욱여 넣듯 반영한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 앳 원스>는 좀처럼 안주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을 전례 없는 영화적 형식으로 창조해낸 역작이다.


코인 빨래방을 운영하며 근근이 삶을 꾸려가는 에블린(양자경)의 삶은 버겁기만 하다. 좀처럼 도움은 되지 않고 성가시기만 한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와 자꾸 멀어져만 가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그리고 점점 늙어가면서 밥투정을 부리는 아버지(제임스 홍)까지, 손을 빌릴 길은 요원하고 오히려 손이 필요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가족으로 인해 삶 자체가 힘겹다. 그런 에블린이 멀티버스의 자아로 분리되는 경험을 거듭하며 다양한 자신의 삶을 대면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자신이 포기한 삶의 가능성을 깨닫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건 부질없다’는 비관으로 내려앉아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세상의 소멸을 방관하고 모두를 파괴하려 한다. 그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그렇다. 이 세계에는 지금 다정함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사랑과 친근한 마음이 절실하다. 누군가는 단절되는 고독 속에서 생의 끝을 예감하고, 누군가는 공허한 연결의 미로 속에서 홀로 헤맨다. 손을 내미는 이 하나 없는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리고, 만난 적 없지만 연결돼 있다는 착각을 전전하며 길을 잃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눈에서 눈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다정함일 것이다. 이는 지금껏 인류가 생존해 온 고유의 전략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소견이 아니다. 진화인류학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헤어 박사와 저널리스트 버네사 우즈가 공동으로 집필한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류가 친화력을 바탕으로 집단으로 공생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인류를 지배해 온 것이 적자생존의 규칙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인류가 허구를 창작하고 공유하는 것도 공동체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 따르면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라고 하며,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라고 했다. 집단생활로 우위를 차지한 호모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의 기원이 된 건 바로 이런 집단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교류의 기반이 상상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타인과의 교류가 늘 행복을 촉진하는 것만은 아니다.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 역시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걸 감당하는 것 역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여정에 포함된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

컬럼비아 의대 정신의학 교수 켈리 하딩의 저서 <다정함의 과학>은 건강한 삶의 해답이 사회적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핵심요소’이며 ‘스트레스가 없는 유일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것도 살아가는 영역 안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를 포기하면 스트레스도 사라지겠지만 반대편에 자리한 가능성에도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할 때 손을 잡으면 두 사람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같아진다고 한다. 두 사람의 몸이 비슷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인데 이를 ‘동조 현상’이라고 한다. <다정함의 과학>에 기술된 이 내용은 결국 우리가 함께 치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설득한다.


그러니까 감당하기 싫어서 고개를 돌릴 수는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등을 져서는 안 된다. 결국 그렇게 마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혹은 자신이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살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런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삶은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돌본 삶이 하나씩 모여 이 세계를 이룰 것이다. 결국 다정함은 그렇게 세상을 구한다. 당신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다정함을 보여 달라. 그것이 당신을 구할 테니까.


(미래에셋증권에서 발행하는 VIP매거진 <세이지클럽>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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