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창작자의 권리를 위협하는 기술이라는 주장은 정말 가당할까?
‘AI 웹툰 보이콧.’ 이는 최근 네이버웹툰 서비스의 도전만화 섹션을 도배하다시피 올라온 게시물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목이었다. ‘네이버웹툰 도전만화’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창작만화 공간’을 표방하는, 전문 웹툰 작가를 꿈꾸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게시할 수 있는 섹션이다. 프로 웹툰 작가가 되길 희망하는 아마추어 발굴의 산실이다. 이런 도전만화 섹션이 AI 웹툰 보이콧을 표방하는 독자들의 반발로 도배가 된 건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네이버웹툰에 게재되며 뜻밖의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건 불완전한 손가락 형태를 비롯한 불균질 한 완성도의 작화 상태 등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특유의 오류로 추정되는 그림체가 더러 발견된 탓이다. 동시에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가 타작품의 유명 캐릭터와 유사하다는 의심까지 더해졌다. 이로 인해 생성형 AI로 웹툰을 그리는 것에 반감을 가진 독자들은 비판적인 댓글을 남기는 것은 물론 도전만화 섹션에 AI 웹툰을 보이콧한다는 게시물을 줄줄이 올렸다. 해당 웹툰의 제작사에서는 마무리 단계에서 AI를 활용해 보정 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미흡한 결과물을 남긴 것에 대한 사과를 전했고, AI로 보정한 컷과 유사성 논란을 부른 캐릭터가 등장하는 컷을 삭제하며 이후 연재 과정에서는 AI 활용 배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해당 작품의 댓글창에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논조의 댓글이 달리고 있으며 대체로 9점대 미만의 평점을 받는 작품이 드문 네이버웹툰에서 3점대의 낮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할 일이었다. 제작사에서 밝힌 것처럼 AI로 후보정 작업을 진행했다면 그 작업의 완성도를 제대로 검수하지 않고 게시해 버린 과정의 문제일 것이다.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는 글을 본 독자의 항의를 받은 매체에서 뒤늦게 제대로 된 퇴고와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실토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을 비판하는 양상에서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AI 활용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를 방치한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AI를 활용한 창작 과정 자체가 주된 비판의 골자다. AI로 그린 웹툰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저작권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AI를 활용한 웹툰은 고유한 창작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의다. 웹툰 창작에 있어서, 더 나아가 모든 창작 과정에 있어서 AI는 온전히 배제해야 하는 기술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일단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을 통해 불거진 AI 웹툰 보이콧 사태는 AI를 호의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노출시키고 논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사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작업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웹툰이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린 작품이 아니라 명령어를 입력하고 마우스를 클릭해서 제작한 ‘딸깍이’라 비하하며 이것이 고유한 창작물로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요즘 웹툰을 온전히 손으로 그린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오늘날 웹툰은 종이가 아니라 태블릿 위에서 그려진다. 물론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작가가 손을 써서 하는 행위다. 하지만 판 태블릿을 쓰는 작가와 액정 태블릿을 쓰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는지도 관건이다. 도면화된 공간 이미지를 3D로 제작하는 것을 돕거나 다른 누군가가 만든 이미지를 활용할 수도 있는 스케치업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작가도 있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린 웹툰이라는 건 웹툰계의 시조새에게도 완벽하게 적용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원칙일 수 있다는 의미다.
AI를 활용한 웹툰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저작권 보호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빅데이터 기반의 학습을 거친 AI의 연산 결과가 기존 창작물을 표절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논리처럼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는 아니다. 이를 테면 여타의 창작물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를 끌어와 부분적으로 조합한 뒤 AI를 활용해 적당한 아류작을 만들어내고 이를 양산하는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AI 탓은 아니다. 도구를 쓰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아류작을 소비할 독자들이 해당 작품의 문제 여부를 떠나 수준을 판별할 눈높이를 갖고 있다면 불필요한 기우일 수도 있다. AI는 죄가 없다. 단지 지금은 과도기일 뿐이다. 기술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방식도, 한계를 지양하는 방식도 엄밀하지 않다.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과 관련한 논란은 AI를 활용 과정의 면밀함이 떨어지는 문제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벌어지는 논란의 양상을 보면 AI가 웹툰 창작을 위협하는 스카이넷이라도 된 것 같다.
AI 웹툰 보이콧 논란에 네이버는 AI를 활용한 웹툰 제작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방안을 준비한다고 했다. 카카오 역시 자사 공모전 응모 작품이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이라는 의미를 줄인 ‘인손인그’의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미래지향적인 기술 활용이 창작 활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지향하는 대신 미지의 기술 활용이 불러온 논란을 지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편하다는 사업자의 인식마저 팽배한 상황이다. 물론 AI에 경외심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생성형 AI의 작화 수준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듯한 표현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AI를 통해 구현된 결과는 결국 인간의 의지로부터 구체화된 것이다. 생성형 AI가 단독적으로 결과물을 기획하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결과물을 보여준다 해도 도구로서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비상한 아이디어가 있는 기획자 입장에서 생성형 AI는 훌륭한 그림판 노릇을 해줄 것이다. 반대로 오픈 AI는 작업에 필요한 자료 확보와 정리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과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대부분의 현대 예술은 기술을 바탕으로 진화하고 변모해 왔다. 웹툰 역시 디지털 기술을 근간으로 발전한 만화의 현대적인 판본 아닌가. 그런 웹툰이 AI를 금지해야 할 기술로 여긴다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퇴보적인 사건처럼 보인다. 웹툰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기형적인 시각을 적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 인간의 독창적인 글쓰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뉴요커> 매거진에 오픈 AI 챗GPT에 관해 기고한 SF작가 테드 창의 물음이다. 그는 AI가 대규모 정보를 빨아들인 학습능력으로 발휘한 연산 결과가 인간의 독창성에 범접하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그렇다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기술적으로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언젠가 <스타워즈> 같은 SF영화처럼 AI 기반의 로봇이나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동등한 인격체의 면모와 자격을 갖추는 시대가 온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 AI는 인간의 삶에 일조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해상도를 지닌 기술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 AI를 활용한 웹툰을 금지한다는 건 지극히 낭비적인 시행착오이자 문화지체에 불과하다. 기술을 기반에 둔 예술 분야에서 당장 쓸모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최신의 기술을 빠르게 활용할 기회를 창출하는 대신 오히려 금지한다는 건 일종의 자연도태다. AI는 창작자의 적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창작자의 꿈을 꾸지 않고 있다. 그저 활용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