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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31. 2024

규제는 극장의 미래가 아니다

홀드백 법제화가 과연 한국영화의 위기를 구하는 타계책일까? 

지난 2023년 12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영화 제작과 배급, 극장 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와 관련 산업 연구자들이 ‘영화산업 재도약을 위한 홀드백 법제화 토론회’라는 주제로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서 홀드백이란 간단히 정리하자면 영화관에서 상영된 작품이 OTT나 VOD 서비스를 비롯한 2차 상영 플랫폼으로 이관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특별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작품의 흥행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홀드백을 진행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영화 산업의 주요한 쟁점으로 홀드백 법제화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홀드백 법제화가 영화산업 재도약을 위한 필수 요건인 걸까? 


3년여 동안 이어진 팬데믹 기간은 영화관 산업에 전례 없이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질병의 전염을 초래한다는 경고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위기는 필연적이었다. 극장 방문 자체가 기피해야 할 행위가 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화제작들은 극장 개봉을 미루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고, 그중 몇몇 작품들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당장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우회해 작품을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산업은 팬데믹 시대의 특수를 누리며 급격하게 성장했고, 이와 함께 사람들의 의식도 변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한 해에 국내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수는 2억 2천만 명 이상에 달했지만 엔데믹 이후로 2023년 한 해에 국내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수는 1억 2천만 명을 넘긴 수준이었다. 미국 극장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 내 극장에서 벌어들인 박스오피스 수익은 89억 불 수준으로 113억 불 이상의 수익을 올린 2019년과 비교했을 때 75% 정도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건 한국도, 미국도, 팬데믹 이후로 침체된 극장 산업이 엔데믹과 함께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보다는 미국의 회복세가 보다 빠른 양상이다.


미국 내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 산업과 극장 산업 사이의 갈등이 적지 않게 야기됐다. 대표적으로 팬데믹 시기에 극장 개봉을 감행한 <테넷>의 스트리밍 서비스 공개 시기를 놓고 오랫동안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주로 배급해 온 워너브라더스와 갈등을 빚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신작 <오펜하이머>의 배급사를 유니버설 픽쳐스로 결정한 바 있다. <블랙 위도우> 같은 경우 디즈니플러스 공개 일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연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공개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극장 수익에 따른 러닝 개런티 계약을 맺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권한을 위배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렇듯 유례없는 재앙과 함께 산업 전반의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은 극장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처럼 이 모든 상황이 산업 내에서 정확하게 논의된 바 없는 새로운 현상이 된 것이다. OTT 플랫폼의 성장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팬데믹은 예상치 못한 촉매였다. 이런 상황이 팬데믹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엔데믹 이후로 다양한 OTT 플랫폼은 수익 악화를 경험하거나 예상하며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 편수를 줄이거나 플랫폼 간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토종 OTT 플랫폼 사업의 적자가 가중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 개봉영화의 홀드백 법제화가 국내 영화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은 증명할 수 없는 점괘 같은 것과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극장 산업과 영화 산업의 혼란은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소비 심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극장 개봉작이 빠르게 OTT 플랫폼으로 이관되는 상황을 지연시킨다고 해서 극장 관객수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비약에 가깝다. 오히려 극장에서 수익을 올리지 못한 작품의 적자 구조를 빠르게 만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일이 될 수 있고 OTT 플랫폼을 비롯한 2차 시장을 저해하는 뜻밖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전례 없는 팬데믹으로 인해 내려앉은 극장 분위기가 예년처럼 회복될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이 모든 혼란이 아직 과도기 양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장도, OTT 플랫폼도 모두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홀드백 법제화는 의외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규제가 될 수도 있다. 개봉 영화가 OTT 서비스로 넘어가는 기간을 제한한다고 해서 관객이 다시 극장에 모일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극장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는 것, 거기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극장의 미래는 결국 거기 있을 것이다.


('Noblesse MEN' 매거진 2024년 1~2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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