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떠오른 텍스트힙이 그렇게 나쁩니까?
“<흑백요리사> 열풍을 막을 다음 도파민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K문학일 줄이야.” 사석에서 지인이 뱉은 말이 문득 흥미로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대폭발한 거대한 불꽃을 올려보는 듯한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언빌리버블’. 한국인 최초는 물론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수상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으로 한강이라는 이름이 호명된 것 자체가 ‘한강의 기적’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당일 저녁부터 온라인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는 한강 작가의 책이 엿새만에 100만 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럴만한 일이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는데,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의 책 사기를 중단할 수 없는 한국인이 많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100만 부든, 200만 부든, 구매하고 정독을 하든, 구매 후 사진을 찍어서 SNS에 공유하고 말든, 당연한 일이다. 한강의 책은 이제 가장 값싸게 소유할 수 있는 한국 최고의 지성이다.
그러니까 이건 거대한 현상이다. 신드롬이다. 한강 작가의 책이 잘 팔린다는 건 일단 서점가와 한강 작가의 책을 출판할 권리를 가진 몇몇 출판사 입장에서는 굉장한 호재일 것이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출판계에서는 분명 좋은 소식일 것이다. 도파민에 기대어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라 해도 분명 의미 있는 현상이다. 책도 물성이 있는 재화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좋은 재화가 팔리고 있는 셈이니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한강 작가의 책이 잘 팔리는 현상을 ‘텍스트힙 열풍’이라는 수사로 연결하는 건 인과적인 측면에서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이에 대해 딱히 반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무의미하다고 여길 일은 결코 아니라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본 성인이 43%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1994년 첫 조사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였다.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성인의 수가 과반수 이상이다. 출판 시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책은 정말 팔리지 않는 재화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힙’이라는 단어는 사실 벼랑 같은 유행어다. ‘문장이 힙하다’는 건 문장 혹은 도서가 어떤 현상에 기대지 않고 너르게 읽히거나 팔릴 수 없는 현실의 반증이다. 난세에 영웅이 필요하듯, 위기를 구원할 유행이 절실한 법이다. 실제로 젊은 세대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책 읽기를 힙하게 여기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그럴싸한 언어의 유행을 넘어 확실한 수치로 증명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책 읽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정의되는 용어가 등장한 것을 지금 시대에서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둑질이 유행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가 성행하는 것도 아니고, 책 읽기를 힙하게 생각한다고 하니 되레 응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독서’ 운운하며 이런 유행을 비웃으려는 이들이야말로 정말 고약하지 않은가. 다 떠나서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딴 참견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K문학의 성취’ 같은 수사가 더해지는 것도 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아카데미 4관왕이 <기생충>만의 독별한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배우고 경험한 한국영화계 덕분에 이룬 성취라고 말한 바 있다. 한강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문학계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든, 미비하든, 한강 작가는 한국 문단 안에서 소설을 써왔고, 그와 함께 존재해 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그것이 텍스트힙과 연결이 되든, 출판 시장에 찾아온 일말의 청사진이라 하든, 반가운 일은 반가운 일이다. 적어도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리고 의미 있는 책이 팔린다는 건 분명 우리 사회에도 호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악재는 아니지 않은가. <소년이 온다> 같은 양서를 손에 쥔 이들이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는 건, 분명 그런 일이다. 진정한 텍스트힙이랄까?
('Noblesse MEN' 매거진 2024년 12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