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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04. 2018

<탠저린>그들이 사는 세상

평범하지 않은 그녀들의 하루를 그린 영화 <탠저린>.

“드디어 가슴 생겼구나!” “여성호르몬 효과 봤지. 팔뚝만 망했어.” 영화의 시작부터 두 여자의 대화가 심상찮다고 느낀다면, 그렇다. 그들은 트랜스젠더다. 실제로 <탠저린>의 두 주인공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분)와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 분)를 연기한 두 여자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섭외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한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부터 이미 절친한 사이였던 두 여자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고 능청스럽게 역할을 소화해내는 동시에 기성 배우라면 결코 흉내 낼 수 없었을 진짜 삶을 카메라 앞에 고스란히 노출한다. 덕분에 <탠저린>은 대단히 흥미로운 극영화처럼 보이다가도 트랜스젠더의 실제적인 일상을 생생하게 따라가 포착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28일 동안 감옥에 수감됐던 신디는 LA의 도넛 가게에서 만난 알렉산드라와 대화 도중 자신의 애인이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를 잡으러 간다. 그렇다. 이게 이 영화를 튕겨내는 출발선이자 영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주된 동력이다. 간단히 말하면 별다른 내용이랄 것이 없어 보인다. 애인과 바람피운 여자를 잡으러 가는 신디의 동선과 이를 만류하다 결국 저녁에 예정된 음악 공연을 준비하러 떠나는 알렉산드라의 동선을 따라 흩어지는 카메라는 두 사람 외에도 아르메니아 출신의 택시 운전사 라즈믹(카렌 카라굴리안 분)에게도 따라붙으며 예측할 수 없게 확장된 이야기의 방향성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그 동선이 끝내 다다라 머물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일종의 소동극에 가깝지만 그들의 동선을 통해 등장하고 퇴장하는 다양한 성 소수자를 비롯해 성매매와 마약 거래를 일삼는 후미진 뒷골목 인생들을 거듭 목격해나가는 과정은 로드 무비를 보는 흥미와 밀착한다. 명확한 이유로부터 시작되는 필연적인 여정 위로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격발되듯 덧씌워지는 우연의 연속을 설계해내고 그 사이에서 거듭되는 인물들과의 대화 양상에서 촉발되는 경쾌한 리듬감은 이 영화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오락성을 띠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제목이 <탠저린>인 이유는 영화를 규정하는 색감이 감귤류에 가까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노란 테이블을 바탕에 둔 오프닝 시퀀스부터, LA 거리의 석양이 지는 하늘을 비롯해 오렌지색 계열의 색감이 두드러진 네온사인과 소품들이 거듭 등장하는 이 작품은 오로지 아이폰5 두 대만으로 촬영했다. 감각적이고 과감한 앵글의 촬영술 그리고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편집술은 낯선 풍경과 외모를 익숙한 흥미로 재빠르게 치환해내는 <탠저린>의 연금술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 숀 베이커의 지난 연출작이기도 한 <탠저린>은 심각하고 무겁게 다루던 성 소수자와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을 경쾌하고 활달하게 그려냄으로써 그들의 일상이 절대적으로 남다른 무엇이 아닌, 나와 다른 개인들의 삶일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꾀하는 것 같다.


물론 영화의 결말부에서 비로소 하루의 종착역에 다다른 듯한 신디와 알렉산드라의 가라앉은 표정은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을, 수많은 무언의 폭력 앞에서 당당하게 하루를 견뎌내야 했을 그들이 사는 세상에 점철된 피로와 우울을 짐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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