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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04. 2018

<올 더 머니>악마를 보았다

<올 더 머니>는 자본주의라는 지옥에서 잉태된 악마에 관한 영화다.

2017년 11월 8일 소니픽쳐스에서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12월 2일 북미 개봉을 앞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올 더 머니>의 재촬영을 결정한 것이다. 그에 앞서 2017년 11월 16일 ‘AFI(American Film Institute) 페스트’에서 처음 공개하기로 했던 프리미어 일정은 이미 10월에 일찍이 취소된 터였다. 배우 앤서니 랩이 10대 시절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직후였다. 케빈 스페이시는 <올 더 머니>에서 가장 중요한 주연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케빈 스페이시라는 좌표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리듯 여론과 언론이 맹비난했다. 그가 “앞으로 동성애자로 살아갈 결심을 했다”며 비열한 커밍아웃을 해버린 탓에 더욱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케빈 스페이시라는 배우의 근간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에서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올 더 머니>의 제작사 소니픽쳐스도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건 팔순의 노장 감독 리들리 스콧이었다.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투자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만약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캐스팅할 수 있다면 9일 안에 영화를 다시 촬영하겠다고.”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케빈 스페이시가 캐스팅되기 전에 진 폴 게티 역으로 고려한 배우였고, 이미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상황이었다. 진 폴 게티와 마찬가지로 80대 노인이라는 점도 주요했다. 50대 후반인 케빈 스페이시처럼 팔순 노인의 역을 위해 특수 분장을 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그만큼 촬영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케빈 스페이시의 분량을 대체하는 재촬영 논의가 시작됐고, 제작진과 배우에게 의견을 구했다. 결국 만장일치로 재촬영이 결정됐다. 물론 단 한 사람의 의견은 필요 없었다. 전 주연배우 케빈 스페이시 말이다. 재촬영이 필요한 건 케빈 스페이시가 등장하는 22개의 신이었고, 재촬영 기간으로 허락된 건 11월 20일부터 29일까지 단 10일뿐이었으니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미셸 윌리엄스, 마크 월버그를 비롯한 배우들과 제작진은 추수감사절에 <올 더 머니>의 촬영지인 로마로 날아갔다. 예정된 개봉일에 새로운 영화를 선보일 수 있도록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영화에 투신했다. 그렇게 영화가 다시 완성됐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완성된 영화는 2017년 12월 18일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새뮤얼 골드윈 극장에서 최초로 빛을 봤고,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으며, 12월 22일 와이드 릴리스 형식으로 개봉했다. 지난 1월 7일에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감독상 후보에 오른 리들리 스콧을 비롯해 미셸 윌리엄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각각 영화-드라마 여우주연상 부문과 영화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하는 과정에서 정말 영화 같은 상황을 맞이했던 <올 더 머니>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을 사들여 석유 사업가로 성공해 당대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된 진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가문에 관련된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1973년 로마에서 진 폴 게티의 손자 존 폴 게티 3세(찰리 플러머)가 납치된 사건을 다루었다. 이 사건이 세계적인 관심을 끈 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의 손자가 납치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올 더 머니>라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난 손주가 열넷입니다. 몸값을 주기 시작하면 유괴되는 손주가 열넷이 되겠죠.” 진 폴 게티의 손자를 납치한 이들이 17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한다는 것을 안 기자들이 진 폴 게티의 집 앞으로 몰려들어 차후 대응책을 묻자 그가 남긴 말이다. 그는 4개월 동안 계속된 납치범들의 협상을 통해 돈을 줄 수 없다는 일관된 자세를 보였다. 그나마 게티 3세의 어머니인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의 설득으로 납치범들이 거듭 몸값을 낮추게 됐으나 끝내 진 폴 게티가 손자의 몸값을 지불할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된 납치범들의 분노를 사게 됐고, 결국 게티 3세의 귀를 잘라 가족에게 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10일 안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다른 부위를 잘라 보내겠다는 협박과 함께 몸값 320만 달러를 제안한다. 진 폴 게티는 결국 이 요구에 응하지만 납치범들이 제시한 몸값에서 50만 달러를 깎은 270만 달러를 제안한다. 270만 달러라는 금액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는 게티 3세의 아버지 존 폴 게티 2세(앤드류 부찬)가 진 폴 게티에게 연 4%의 이자를 쳐서 갚겠다고 설득해 수락한 것이었다. 결국 그러고 나서야 몸값이 지불됐고 게티 3세는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심한 충격을 받은 그는 후유증에 시달려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에 빠져들었다가 불과 23세의 나이에 뇌졸중을 앓고 시력 상실과 반신불수의 상태로 휠체어에서 여생을 보내다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할아버지를 둔 탓에 납치당한 손자가 몸값을 구하지 못해 인생을 망치게 된 기막힌 아이러니. 리들리 스콧은 <올 더 머니>를 연출한 이유에 관해 이와 같이 말했다. “부자란 무엇일까? 그들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해도 2000만 달러 이상의 재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저 점심값을 지불한 것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엄청난 부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리들리 스콧은 놀랍고 끔찍한 과거의 실화가 동시대의 관객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돈을 다 가진 대부호 진 폴 게티는 자신의 대저택을 호화로운 공기로 채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고가의 미술품을 두른 집 안에 자리한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그의 곁에는 사람이 없다. 그는 외로움을 모르는 존재다. 외로움을 소유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동일한 저울질로 여긴다. 마약에 빠져 망가진 아들과 이혼하겠다는 며느리는 진 폴 게티에게 거액의 위자료와 합의금, 재산 분할을 포기하는 대신 아들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그 순간 진 폴 게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무슨 흑심이냐? 다들 내 돈을 원하는데.” 끝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말한다. “당한 기분은 드는데 뭘 당했나 모르겠군.”


진 폴 게티는 자기 자신과 체스를 두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없다.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통해 사고하고, 이를 삶의 철학이자 태도로서 견지하며 살아온 존재다. 결국 그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애정도 자신의 혈육이라는 소유욕에 기반을 둔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의도를 기반으로 이뤄진 행동이나 사고가 아니라 그에게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자연적인 철학에 가깝다. 손자에 대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정도로 애착이 있다고 말하지만 납치범들의 손에 있는 손자의 몸값을 지불할 마음이 없는 건, 그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방식이 마음을 쓴다기보단 자신이 세운 왕국의 일원으로 편입해 세상을 소유하는 일원이 될 기회를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손자의 몸값조차도 그에겐 수많은 기회비용으로 여겨지는 낭비일 뿐이다. “모든 건 제 값이 있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은 그 값이 뭔지 알아내는 씨름이란다”라며 손자를 향해 말하는 진 폴 게티의 철학은 납치된 손자를 통해 고스란히 적용된다.


결국 <올 더 머니>는 자본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우화 같은 작품이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의 스크루지를 능가하는 자본의 화신이라 해도 좋을 진 폴 게티가 허구로 창작된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서 길어 올린 인물임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생경한 풍경으로 가닿을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편 이 영화는 진 폴 게티뿐만 아니라 게티 2세의 전 부인이자 진 폴 게티의 며느리였던 게일 해리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들인 게티 3세를 구하고자 납치범들과 끊임없이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아들의 몸값을 내줄 동아줄인 진 폴 게티와도 거듭 협상을 벌이는 입장이 된다. 돈을 얻기 위해 폭력을 감행하는 납치범들과 돈을 내주지 않기 위해 폭력을 외면하는 진 폴 게티 사이에서 그녀는, 돈이라는 무게중심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 철학을 결정하는 양쪽의 민낯을 중계하는 인물로 관객의 시점과 감상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타락한 인간성 사이에서 인간의 마음으로 분투를 벌이는 역설적 존재인 셈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게일 해리스의 시선을 통해 영화를 관통하는 동시에 그의 심정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



<올 더 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소유한 남자의 마음에 인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역설을 목격하게 만든다. 수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일말의 마음도 허락할 줄 모르는 이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화 결말부에서 진 폴 게티의 두상을 바라보는 게일 해리스의 표정은 인간적인 믿음을 뒤흔들고 시험대에 올린 자본 그 자체에 대한 경멸과 회의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올 더 머니>는 가질수록 되레 끝없이 갖고 싶어지는 소유의 역설 그 자체를 대변한 어느 한 인물의 선례를 통해 작금의 시대와 세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세상을 매매의 척도로 재단하는 자본주의의 지옥에서 잉태된 악마의 시대, 돈의 화신이 된 괴물들의 세계. <올 더 머니>는 어쩌면 바로 그 지옥에 관한 첫 번째 경고를 환기시키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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