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밤 (비간, 2018)
이 주문을 쓰면 날아서 건널 수 있을 거야.
탁구채를 돌리면 날아가거나 집이 빙빙 돌거나. 긴 레일을 타고 내려가거나, 작은 마을을 돌거나.
참 꿈같은 일이다.
내가 좋아하던 그녀를 다른 모습으로 만나도, 여전히 사랑하게 되고.
나의 아들이 될 즈음인 아이가 거칠어도, 같이 탁구를 치며 놀았으니.
좋은 꿈일까? 너무 슬플 땐 사과의 심지까지 먹게 된다는데..
슬픈 삶을 사는 것보다, 꿈에서 깨지 못하는 게 슬픈 거라는 말은
현실과 기억 언저리에서 날 계속 아프게 한다.
왜 그녀는 떠났을까. 나는 몰랐는데,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왜 영화관에서 그녀는 울었을까.
되풀이되는 기억만 남은 현실은 느리고 황량하다. 점점 마모되어 가는 것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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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파편적인 나레이션으로 메꿔진다.
인물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명확지 않다.
그러나 지배적인 감정은 명확하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녀가 없는 삶의 공백이 그의 삶 전체가 되었다.
슬픈 일이다. 너무 짙은 애상에 파묻혀 사는 것은..
비밀이 많은 그녀와의 추억들이 얼기설기 끝나갈 때쯤, 그들은 영화관에 간다.
그들이 보는 영화의 제목은 '지구 최후의 밤'.
분명히 꿈일터인 이 이야기는 영화의 절반이다.
현실은 그렇게 파편화되어있더니, 이 꿈은 현실의 시간감을 표현하듯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꿈에선 엄마도 만나고, 소중한 시계도 받는다.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 그 시계는 그녀의 손목에 있다. 그녀의 꿈을 꾸면서 그는 슬프게 현실로 돌아온다.
꿈속에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산다는 건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반드시 선형적이지 않아도 감정을 이렇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도 여운이 남는다.
이 영화에 대해선 한 달이 넘게 쉽게 글을 쓸 수 없었다.
지금도 사과를 먹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마 난 심지를 남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