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부터의 최면

하얀 리본(미카엘 하네케,2009)

by 김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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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강렬한 포스터 이미지다.

소년은 순진함과 반항심을 동시에 가진 듯한 인상이다. 그는 명백히 억압받고 있고, 눈물에는 분노와 굴복이 서려있다.


이 영화에는 사실이 없다. 사건만 있다.

왜 사건들이 발생했는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기엔 각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같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답을 원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청자가 아닌 화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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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황하며 영화는 끝이 나있다.




해당 영화는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근대의 성질들이 세상에 어떻게 착색되어 가는지 영화는 독일 시골 마을의 사건들로 나타내고 있다.


가톨릭과 가부장제가 그 단일성으로 생활을 딱딱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재단한다.

필요 이상으로 딱딱해진 규율은 군대의 모습과도 닮아간다.

사람들은 정념해야 하고 아이들은 순종적이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들은 불결할 수 있다.

포스터 속 소년은 정화되어야 했다. 단순히 하얀 리본을 팔에 묶어줌으로써 그것은 가능해야 한다.

비록 잘 때 양손이 흰 천으로 묶여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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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영주는 남작으로 고결한 귀족이기에 평민들을 다스릴 수 있다.

그는 산업화된 흐름에 맞춰 노동자들을 운용한다. 그것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지라도 이것은 이성에 따르는 것이다. 필요한 일들을 합리적으로 행하면서 생기는 불운인 것이다.


굶어가는 소작농들은 말을 해선 안 된다. 불만이 생긴다면 그것은 삶의 이치다. 올바른 국민은 나라를 향해서도, 계급을 향해서도 분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해나가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합리적인 영주의 조정에 의해 굶어 죽을 테니.



영화는 마을 출신이 아닌 선생님의 시선으로 읊어진다. 그는 다만 의심해갈뿐이다.

마을은 이런 분위기였고, 자신이 본 아이들은 이러했으니, 그들의 소행을 탓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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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아이들은 분명 수상하다. 특히 그들을 주동하는 두 남매.

너무 어른인 듯 행동하는 맏언니와 눈물을 흘리는 남자아이. 그들은 커서 어떤 이들이 될까?

어쩌면 홀로 검은 옷을 입고있는 맏언니 한명이 아이들 전체를 감화시킨게 아닐까?

그렇다해도 다른 아이들이 이에 따른것은, 그들 안에 동일하게 잠재된 것들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 찾아오고, 나라의 중심이 흔들릴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을 억압했던 시스템을 개혁하기보다, 주입받은 명령에 응해 소속되고픈 것이 인간의 속성이란 점은 참 기묘한 일이다. 어떤 국가보다 군국주의에 빠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뒤틀린 시기가 잠재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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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면아래의 차오르는 압력을 흑백의 필름들로, 느슨하게 연결된 시각들로 하여금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여러분은 누가 의심되나요? 사실이란 뭘까요?"

주어진 정보만으로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추론을 한다. 영화를 볼 때에도 그렇고, 국가에서 자라날 때도 그렇다. 내 삶의 환경이 정보의 전체다. 그것이 부분이라는 감각은 깨닫기 어렵다. 사실보다 지배적인 것은 감각이고, 합리적이라는 착각은 판단의 확장을 멈추게 한다.


나는 어떤 시스템 아래에서 자랐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심어져 있는 잠재적인 명령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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