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훈
자! 길을 가라
- 방훈
.
.
.
.
.
자! 길을 가라
그러나
그 길은 네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정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움푹 패인 웅덩이에는 下水가 흘러넘치고
길 한편에선
구더기가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이미 썩어 부패한 고양이의 사체(死體)도
너덜너덜하게 버려져 있으리라
자! 길을 가라
그러나
그 길은 네가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는 않으리라
끈끈이에 걸려 발버둥치는
쥐새끼의 절망스러운 끈적거림과
배가 터져 내장이 쏟아져 나와 길거리에 흩어진
죽은 개의 절단 당한 파편들이
뒤를 좇고 있으리라
자! 길을 가라
그러나
그 길은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길은 네게 속삭이리라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자! 길을 가라
그러나
그 길은
네가 아무리 가도 가도
네가 죽지 않는 한
결코
그 속삭임을 멈추지는 않으리라
.
.
.
.
.
“ ”의 내용은 단테의 지옥편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