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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31. 2018

시가 내게로 왔다

- 방훈


시가 내게로 왔다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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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나는 어디에서나, 어디에다라도 시를 썼다.
내가 가는 길 자체가 시가 되었고,
내가 말하는 것 자체가 시가 되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조차도 시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시가 내 곁을 떠나갔다.
아름답던 시는 한 줌의 빵이 되었고,
열정적이던 시는 몇 푼의 돈이 되었고,
순수하던 시는 쓰레기가 되어
세상에 뒹굴었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젊었던 날의 방황과 절망으로 얻은
몇 줄의 시는
아직도 내게 남아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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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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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言)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 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에 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혹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찔려 벌집이 된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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