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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12. 2018

포구(浦口)의 아이

- 방훈

포구(浦口)의 아이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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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지친 포구에서 태어난 아가야

너는

튼튼한 밧줄에 하루종일 허리가 묶여

배가 고파 몸부림 쳐도

똥을 싸 목청 터지게 울어도

너를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구나

두 평 방안에 갇혀 있는 아가야

어미는

동트기 직전에 아비와 함께

작은 목선(木船)에 몸을 싣고

거친 바다로 나간단다

아가야 

어미는 바다에 나가야만 한단다

거친 파도에 시달리며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단다

그물걷이를 아비와 함께 해야만

아가

너와 함께 먹고 살 수 있단다

아가야 

해가 떠 포구를 환히 비칠 때

잠시 돌아온 어미는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한단다

아비는 잡은 고기를 팔러 가고

이 어미는 포구에서 그물을 추스리다가

아비가 돌아오면

또 다시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야만 한단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까지

뼈빠지게 일하고도

전혀 형편이 나아지질 않는 이 현실이 원망스럽구나

손이 억센 그물에 닳고닳아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일하고

힘든 노동 때문에

심신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는데도

형편은 조금도 나아질 줄 모르는구나

아가야 

너의 허리를 굵은 밧줄에 묶은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네가 커서 철이 들면

이 어미의 아픔을 이해해 주렴

아가야 

이 어미가 너에게 맹세하마

너만큼은 미친듯 날뛰는 해풍(海風)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내로 키우마

그런 사내가 되어

이 못난 어미의 슬픔을 달래 주렴

아가야 

울다 지친

방에 갇혀 몸부림치는 포구의 아가야

이 어미는

작은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도

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구나

날이 험해 파도소리 험악해도

갈매기가 날아와 요란하게 울어댄다해도

아가야 

너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들려온단다

아가야

이 어미는

심한 배멀미 때문에 초죽음 상태에 이르러도

너의 모습은

이 어미의 눈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단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너의 몸부림이 눈에 선하구나


밧줄에 묶여 이 어미의 젖을 기다리는 포구의 아가야

돌봐주는 이 하나 없는 가엾은 아가야

아비와 어미의 그물은

빈 그물일 때가 많단다

가끔가다 바다고기가 드문드문 걸릴 뿐이다

오늘은 고기 한마리 걸리지 않는 빈 그물이다

아가야

아비는 막소주로 쓰린 속을 씻어 낸다지만

어미는 타는 속을

무엇으로도 삭일 수 없고 씻어낼 수 없구나

가슴속에 푸른 멍이 멍울멍울 들었구나

아가야 

이 어미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는단다

너가 어서어서 커

이 슬픈 겨레의 건강한 아들이 되어

밧줄에 묶인 너의 허리를 스스로 풀을 때

그때야만 달래질 것 같구나

아가야 

돌아가련다

해는 떠 있지만 어두운 어둠

짙은 절망 속에서도

아가야 

너에게 가련다

하루종일

힘든 노동에 시달렸어도

배멀미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졌어도

아가야 

너에게 가련다

나의 아가야

울다 울다 지쳐 있을 아가야

배가 고픈 아가야

똥을 싸고 그 똥에 누워서 몸부림칠 아가야

포구의 아가야

이 어미의 희망이여



- 1980년대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겪었던 

일을 적었던 글이다. 

우리는 그때와 비교해서 

얼마나 행복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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