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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12. 2018

흉어기의 포구에서

- 방훈

흉어기의 포구에서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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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허한 사내는 그래도 늘 출항했다

늘 빈 그물 속에 

빈 가슴만 가득 채워

깃발 내려진

지친 무동력선 자그마한 목선을 타고

겨울해가 겨울의 마지막 문턱에 걸려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

빈 사홉들이 소주 한 병과 함께 돌아온다

사내의 얼굴은

겨울 흉어기의 포구 마지막 끄트머리에서

폐선의 표정으로 얼룩져

제 나이보다 십년 이상 더 늙어 보이는 몰골로

실패한 바다의 작도를 다시 수정하며

살아 보자고 몸부림친다

그렇지만

바다고기 어디론가 죄다 떠나버린 겨울바다는

더욱 거세게

그 사내를 거부했다

이 겨울 힘들지만 무사히 넘겨야지

이 겨울만 넘기며

흉어기의 포구를 떠나

막노동을 하든지

원양어선이라도 타야지

지금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놈

그 놈만큼은

바다를 제대로 작도할 수 있는 그런 사내놈으로 키워야지

이 아비는

배반의 겨울바다 새벽을

제대로 작도하지 못 해

가슴까지 떨면서 겨울바다 새벽으로 나가지만

아들놈만큼은

새벽에 두 다리 뻗고 단잠을 자게 해야지

그럴러면

이 겨울 힘들지만 무사히 넘겨야지

아무리 어려워도


가슴이 허한 그 사내는 오늘 새벽에도

바다고기 죄다 떠나버린

그 상실의 겨울바다로 출항했다

그러나 겨울바다는

아직도 폭풍주의보를 안은 채 몸살을 앓고 있었다


흉어기의 겨울 포구는

그해 겨울 내내

심한 배멀미를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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