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훈
흉어기의 포구에서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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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허한 사내는 그래도 늘 출항했다
늘 빈 그물 속에
빈 가슴만 가득 채워
깃발 내려진
지친 무동력선 자그마한 목선을 타고
겨울해가 겨울의 마지막 문턱에 걸려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
빈 사홉들이 소주 한 병과 함께 돌아온다
사내의 얼굴은
겨울 흉어기의 포구 마지막 끄트머리에서
폐선의 표정으로 얼룩져
제 나이보다 십년 이상 더 늙어 보이는 몰골로
실패한 바다의 작도를 다시 수정하며
살아 보자고 몸부림친다
그렇지만
바다고기 어디론가 죄다 떠나버린 겨울바다는
더욱 거세게
그 사내를 거부했다
이 겨울 힘들지만 무사히 넘겨야지
이 겨울만 넘기며
흉어기의 포구를 떠나
막노동을 하든지
원양어선이라도 타야지
지금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놈
그 놈만큼은
바다를 제대로 작도할 수 있는 그런 사내놈으로 키워야지
이 아비는
배반의 겨울바다 새벽을
제대로 작도하지 못 해
가슴까지 떨면서 겨울바다 새벽으로 나가지만
아들놈만큼은
새벽에 두 다리 뻗고 단잠을 자게 해야지
그럴러면
이 겨울 힘들지만 무사히 넘겨야지
아무리 어려워도
가슴이 허한 그 사내는 오늘 새벽에도
바다고기 죄다 떠나버린
그 상실의 겨울바다로 출항했다
그러나 겨울바다는
아직도 폭풍주의보를 안은 채 몸살을 앓고 있었다
흉어기의 겨울 포구는
그해 겨울 내내
심한 배멀미를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