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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Sep 04. 2018

인부의 새벽

- 방훈


인부의 새벽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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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내는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마음은 벌떡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이 아니다.
일도 못하고 쉬고 있는데
일할 때보다도 몸이 더 아프다.

밖에는 아직 어둠이 가득하다.
늙은 사내는 자기보다도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싼 아내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비탈길을 걸어 새벽 인력시장으로 향한다.

겨울 초입인데도 일교차 때문인지 한 겨울보다 더 춥다.
새벽의 추위는 늙은 사내의 뼛속까지 파고든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일을 해야 할 텐데,
단돈 몇 만원이라도 벌어야 하는데
그게 우리 가족 목숨줄인데,

늙은 사내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어쩌다 나타난 인부를 구하는 사람은
젊은 사람들을 골라갈 뿐이다.

나이 먹은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양
나이도 속이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그 늙은 사내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도 공쳤어,
내 육십 평생을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이렇게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야,
불황도 이런 불황은 처음이야,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에 추위를 녹이지만
이미 식어버린 아내의 도시락처럼
사내의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주머니에 남은 동전 몇 닢으로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싸늘하게 식은 가슴을 달래지만
이미 늙은 사내의 마음은
자기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벌써 인력시장은 파장을 맞았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도 않았지만 
장은 끝났다.

헛헛한 바람이 분다.
이제 세상을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늙은 사내는 어둠 속을 걸어온 것처럼
다시 어둠 속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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