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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11. 2018

그 날, 망가리에 갔다

- 방훈

그 날, 망가리에 갔다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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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탄 날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고함소리에 눈을 뜨니 
운전기사가 
종점이라고 말한다

목적지를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적벽돌로 엉성하게 만든 정류장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마을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따라 어두운 하늘에는 별도 없었다 
아파트 공사장의 흉물스러운 뼈대만이 
전쟁후의 폐허처럼 서 있었다

어둠이 나의 가슴을 덥석 베어 물고 
나는 한 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만 목적지를 지나 내린 것이 아닌지도 몰라 
희망도 이미 목적지를 지나버렸고 
사랑도 이미 목적지를 지나 버렸는지 몰라

부주의로 인하여 
지나쳐 온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차로는 얼마 되지 않는 길일지라도 
내 발걸음으로는 
얼마나 걸어야 할지를 몰랐다

서러워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부주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길을 
되돌아갔던가?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 날, 
나는 망가리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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