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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21. 2018

겨울의 언어

겨울의 언어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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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마다 언어의 겉을 핥는다.

가슴까지 파고들어

밀어를 속삭이던 칼날 바람 속으로

살아 오르는 슬픈 감정의 언어들


새벽을 기다리는 가슴으로

굳게 닫힌 빗장을 열어

그 풀어헤친 젖은 가슴으로

이 자정의 시간

언어의 마을을 여행한다


그러나

끝내

불면으로 원시림을 잉태하는 나의

소박한 꿈의 불씨는

사산하고

내 심장이 터져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한 아이


아이는 청량리의 끝에 서 있다

겨울. 은빛의 눈길을 절뚝거리며 걸어

아득한 저 편

그곳에서 달려오는 예언을 마중하러 간다


역사가 숨쉬는 그 광장에 피어오르는

모반의 깃발은 한층 더 너울대고

입술에서 입술으로 전하는

따스함의 희망


광장에서

모닥불에

감정의 언어들을 불사르고

혈관을 포복하여

은밀하게 심장에 잠복하는

추위를

으스러지게 포옹했다


고리디우스 매듭의 절망 사이에서

밤새도록

몸부림치던 영혼의

서툰 파아란 윤무


제국의 저주에서 풀린 내 언어의 마차는

청량리의 굽은 산길을 달려

빙벽으로 둘러쌓인

다락방 묵은 노트의 행간을 부수고 달려나온다


그해 겨울 내내

내 앙상한 몰골처럼

내 언어의 작업은 초라했다


하지만

겨울 

언어의 마을에서

한줌의 희망의 언어를

내 가슴에 선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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