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날의 눈물을 기억한다.
2019년 4월 부활절 때 세례성사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지 4년이 되었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6개월의 교리수업을 받아야 하고 그 후에 세례성사를 하게 되는데, 교리수업을 할 때였던 듯 싶다. 미사참례 중 자비송을 할 때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라며 울면서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난 너무 힘들었다. 제발 죽여달라고. 제발즘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죽은 자들의, 자살한 자들의 용기가 나는 너무 부럽다고. 난 용기가 없어서 죽을 시도를 못 한다고. 제발즘 죽여달라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찾아봤었다. 그런데 용기가 없었다. 단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뉴스에서 자살했다라는 기사를 접하면 그렇게나 부러웠다. 그들의 그 용기가. 하염없이 부러워하며 그런 기사를 찾고 찾고 또 찾아봤다.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을 수 있냐고? 죽을 생각을 하냐고? 한다. 왕성한 활동을 준비중이었던 연예인이 자살을 하면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작품을 준비중이었다'라고 하는데 아니, 죽을 수 있다.
그 순간,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나만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없으면 안 되면서도 죽고 싶어서 힘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 단 한 순간도 동생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게 된게 내 목숨보다 귀한 강아지, 꼬마였다. 꼬마가 나를 살렸다. 갑자기 꼬마가 죽으면 난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리내어 펑펑 울었고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그게, 정신건강의학과 다니기 1년 전 일이다. 그리고 다시 정신차리게 되었을 때는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를 보내주었을 때다. 할머니를 보내면서 약속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힘껏 버티고 살다가 죽었을 때 할머니가 마중나와 달라고. "내 따라 가자."하고 내 손 잡고 가달라고. 절대로 내가 스스로 죽지 않을거라고.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틸거라고.
그리고 이제는 동생을 위해서 산다. 나의 아픔이 동생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로 인해 동생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동생이 나로 인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버틴다. 이 셋을 위해 버틴다. 버티고 싶다. 제발 버티고 싶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제발요....
너무 힘이 듭니다.
여기까지 쓰고 병원에 전화를 했으며, 방금 예약 날짜를 당겼다.
나는 살거야. 살수 있도록 버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