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9 - 문득, 그냥
이사하고 나니 어떠냐고 묻는 안부 전화를 많이 받는다. "이사하고 나니깐 좋지?" 라고.
쾌적한 환경이 가장 마음에 들어 좋고, 내 보물인 책들을 펼칠 수 있어서 좋다. 마음껏 펼쳐놓고 색칠 할 수 있어서 좋고, 캘리그라피를 연습할 수 있어서 좋다.
또 다른 좋은 것들도 깊게 생각하면 있겠지. 그런데 이 좋은 것들도 지금은 먼 이야기 같다.
난 아직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긴장감과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서 스트레스 받게 된 할머니한테 온갖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니 나에게는 여유가 없다. "에휴-" 한 마디에도 나는 할머니 방으로 간다.
요양사님이 바뀌었을 때 처럼, 그때처럼 일시적인 치매말기증상, 퇴행된 행동이 나타날까봐 조마조마하다.
윗층에서 조금만 쿵쿵거려도 나는 긴장한다. 할머니가 스트레스 받아서 반응을 보일까봐.
그런데 이 모든 말들이 나를 말하고 있는 듯 싶다. 내가 지금 그러한 상황에서 할머니 대신 스트레스다 받고 있는 것 처럼.
요양사님이 오셔도 나는 그 시간에 쉬지를 못한다. 행여나 내가 안 보여서 그때처럼 퇴행된 행동을 보일까봐. 그러면 그 모든 케어는 내 몫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의사 선생님도, 라미쌤도, 정배도 요양사님이 오면 그때 나가서 바람도 쐬라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나한테는 불안감이다. 그 4시간이 여유있고 기다려지는 4시간이 아니라 긴장의 4시간이 된다.
이렇게 긴장하며 살고 있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싫다.
쉬고 싶다.
나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