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후회하게 되는 건 뭘까

2016.06.11 - 문득, 그냥

by Bwriter

이 꽃 사진.

이 사진을 찾고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 많은 파일 중에서 찾아내서 다행이라고.


눈물 흘리며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 사진 없었으면 난 나를 두고두고 원망했을거고

두고두고 후회 했을거다.



LostFile_JPG_5976416.jpg - 서른 두 살의 어느날에 할머니가 놓아 준 꽃 -



며칠전에 동생 직장동료의 동생이 사고로 사망했다. 그날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동생을 데리러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대놓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죽는 그 상황에 정신이 온전한 상태라면... 죽음의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들까, 어떤 느낌일까, 죽고나서 영혼이 육체를 보게 될까, 죽는 순간에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까.


그러다가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며, 이상하지 않을 병도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상황에 대처할 준비와 마음의 준비를.


상황에 대처할 준비는 부지런히 병원에 열심히 모시고 다니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픔이 없도록 해드리는 것과 혹여라도 자식들이 부담갖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덜어줄 수 있도록 상조회사에 가입하는 것, 그 뿐이다.


그에 비해 마음의 준비는 너무 많다.

그 중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후회' 였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난 후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해'라는 말이다. 그 말뜻 나 역시 몸과 마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충분히 안다. 비록 어려서 겪었지만 나 역시 충분히 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이 느끼고 알게 되는 나이가 됐다.


'할머니가 죽고나면 나는 뭘 제일 많이 후회할까?'

한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가장 많이 후회할 것은 '다정하지 못했다'일 것이다.


살갑지 못하고 차갑고 쌀쌀맞은 내 본연의 성격 그대로가 할머니를 케어하면서 여실히 들어났다. 할머니를 케어하다 몸이 힘들면 힘든대로 표현했고 마음이 힘들면 힘든대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나도 내 상태를 몰랐다. '내가 미쳐가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고 '나 이러다 벌 받지' 싶었다.


그렇게 2년여를 지내다 별것도 아닌 일로 할머니랑 싸우고 그날로 나는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갔다. '나 이러다 진짜 미쳐 돌겠다고' 동생한테 울면서 전화를 걸고 난 후 동네에 있는 정신과에 모조리 전화를 걸어 당장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고 그날로 나도 아팠음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지금껏 치료받고 있다.


핑계를 대자면 나도 환자라서 힘들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 이미 다 인정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치매니깐 자꾸 까먹고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거고, 치매니깐 행동이 말과 맞지 않는거고, 치매니깐 억지를 부리는건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큰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타고, 그 커피를 마셔가며 염주를 돌리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였고, 불경책을 몇 번이고 필사했던 할머니였는데. 그런 할머니가 치매라는 병을 극복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할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였다면 난 그렇게 할머니와 싸우지 않았을거다. 치매라는 병과 내가 말싸움을 하는건데 그건 싸움 자체가 되질 않는 거니깐.


'할머니는 치맨데.. 내가 뭘 어쩌겠다고..'

'이렇게 싸우다 나중에 나 벌 받을지도 몰라..'

'이게 싸울 일이였나..'

할머니와 싸우고나면 항상했던 생각들.. 그래서 느끼는 죄책감.


요즘 우리 할머니가 많이 안 좋다. 갑자기 이렇게 안 좋아지니 덜컥 겁이 나고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계속 생각이 맴돈다.


할머니가 꺽어준 꽃 한송이.

중학생때 할머니가 꺽어서 꽃다발로 한 가득 담아줬던 라일락.

방악 가득 채웠던 그 향기.


조근조근 말하던 할머니 목소리.

내 방보다 깨끗했던 할머니 방.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내가 좋아하는 나물반찬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의 다정함..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는 왜 할머니만큼 다정하지 못했지? 왜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지?'라는 것으로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더 많이 다정하게 대해줄 걸'이라는 생각이 들망정 '왜 그렇게 안 했지?'라는 후회만은 피하고 싶다. 그것이 죽음 앞에서 내 욕심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욕심으로는 그러고 싶다.


"할머니 나 봐봐. 이렇게 고개 들고 나 봐봐. 나 보여? 내가 누구야?"

"......희배"


아직 날 잊진 않았어, 나여사.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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