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다.

by Bwriter

흙먼지가 많이 날린다. 햇볕은 너무 내리쬐고, 그늘에 숨을라치면 금새 그 그늘이 옮겨진다.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매말라가는 살갗처럼 정신도 매말라가고 몸도 지친다. 페스트라는 책은 이런 느낌이다.


페스트로 인해 오랑이라는 도시는 그렇게 되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삭막해도 너무 삭막한 도시에 페스트로 인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적응되었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적응된, 그렇게 희망을 갖게 된 그들의 못브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말이다. 그 모습들이 왜 그리도 쓸쓸하던지.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황.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고 자식이 죽고.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가도 같이 슬퍼할 수 조차 없다.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고, 나중에는 장례식을 치를 수도 없을만큼 사망자는 늘어났고, 결국 단체로 매장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있다고 하여 행복하고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가 줄어들며 도시 전체가 격리상태였던 오랑에서 격리해제 상태가 된 도시로 바뀌며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그 환호가 정말 행복한 환호일까?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은 그것을 승리라고 말한다. 수백명 수천명이 죽었고, 그 와중에 가족도 있었고, 연인도 있었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승리라고 말한다. 그것이 과연 승리일까?


'이건, 사는게 아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몇년 전 우리나라가 메르스로 인해 전국이 난리가 났었다.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 병원에 갈 때 마다 자신의 경로를 체크해야 하는 국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하고, 의료진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려 애썼다. 우리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그 시기, 그 시기는 '사는' 시기였을까. 그 테두리에 들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는' 시기였을까.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안도하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졌고, 가정들이 어려워졌었다.


오랑의 그들은 그 후로 어떻게 살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고통의 비명과 죽어가는 사람을 봐온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 많은 오랑시의 환자를 살피던 의사 리외의 아내는 페스트가 확정되고 도시가 격리되기 이전에 지병으로 인해 오랑 도시 밖의 요양원으로 이동해있었고, 페스트로 인해 만날 수 없었다. 전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것이 전부였다. 자신의 아내를 볼 수도 긴 내용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리외는 오랑 시민들을 페스트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애썼다. 결국 아내는 죽었고, 그 소식은 오랑시가 격리 해제 된 후 알게 된다. 그에게 페스트 후는 승리였을까. 그 쓸쓸함과 허무함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리외 역시 그랑과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마찬가지이며, 사람에게는 감옥과 노동과용기에 지친 나머지 한 인간의 얼굴과 경탄스러울 만큼 애정 어린 마음을 요구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 없는 이 세계는 죽은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그의 생각에 동감한다. 페스트라는 병으로 '사랑'이라는 마음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사랑이 없는 그 시간 동안은 살아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련하고 삭막하고 씁쓸했던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덧붙여본다.






오랑에서는 시간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으레 가지는 어리석은 믿음에 사로잡힌 채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다시 보게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은 작별을 하면서도 일상의 걱정거리들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정신과 마음과 육체로 맺어졌던 사람들이, 예전에 느꼈던 연대감을 대문자로 된 열마디 전보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을 알리려고 그 죽어버린 말들을 기계적으로 베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내뱉는 독백이나 벽에 대고 말하는 무미건조한 대화보다는 상투적인 전부 문구가 차라리 더 나은 것처럼 여겨졌다.


현재는 견딜 수 없고, 과거는 혐오스럽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처지여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정의감이나 증오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자들과 비슷했다. 그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상상 속에서 기차를 다시 달리게 하고 울리지 않는 초인종을 연거푸 누름으로써 시간을 메우는 길뿐이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약하지 않고 오히려 선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많이 알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미덕이나 악덕이라고 부른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믿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통찰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으면 진정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당시에 희망을 하나 품을 수 있따면,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함을 더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한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맞아요. 하지만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그래요, 리외.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나는 인생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






그때 그는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또 지금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또는 사ㅇ이 아무리 강해도 그 사랑을 제대로표현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어머니와 그는 언제나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혹은 그는 평생 자신의 애정을 침묵 이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고 보낸 잃어버린 세월 때문에 어렴풋하면서도 강렬하 감정이 생겨나, 기쁨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보다 두 배는 더 천천히 흘러가야 한다는 보상 같은 것을 막연하게나마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진정한 조국은 그 숨막히는 도시의 벽 너머에 있었다. 진정한 조국은 언덕 위의 향기로운 덤불 속에, 바닷속에, 자유로운 고장들과 사랑의 무게 속에 있었다. 그들은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끼고 등을 돌릴 채 그 조국을 향해 행복을 향해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페스트로 죽었어요." 리외가 덧붙였다. "그런거야." 잠시 뒤에 노인이 말했다. "가장 좋은 사람들이 죽는 거지.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청진기를 집어넣으며 리외가 물었다. "그냥 하는 말이야. 그 사람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더군. 어쨌든 그 사람은 내 맘에 듭디다. 하지만 다 그런거야. 다른 사람들은 '페스트다. 우리가 페스트를 이겼어'라며 난리를 치지. 별것 아닌 일로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거고. 그런데 페스트가 대체 뭘 의미할까? 그것이 인생이야. 그뿐이지."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고 잃어버린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기억나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자 순수함이었다. 리외가 모든 고통을 넘어 그들과 다시 만난다고 느낀 지점도 바로 여기였다.



페스트_알베라카뮈_문학동네.jpg

[2019.03.07 - 2019.04.12]


- '사랑'이라는 마음을 품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야 말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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