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아픔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감히 위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그들은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난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무지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번 뉴스를 통해 접한게 전부였다.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가장 솔직한 말일것이다. 뉴스로 접하고 관심이 있었다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봤을텐데 그러지 않았었다. 그러다 제주4.3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배우 유아인이 이 책을 빗대어 추념사를 했을 때였다.
'어? 4.3사건을 다룬 소설이 있어?' 딱 귀에 들어왔던 배우 유아인의 추념사는 "순이 삼촌에서..."였다. 딱 이거. 순이 삼촌을 통해 제주 4.3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었나?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순이 삼촌'이 제주 4.3사건을 다뤘고, 난 그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참 무지했다. 그리고 그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 가장 먼저 했던 말이 "그래서! 왜 죽였어? 어? 이유가 뭐야? 타당성이 없잖아"였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제주도민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였을까? 왜? 그 시대는 그래야만 했던 시대여서? 증거없고 이유없는 빨갱이탄압을 위해서?
나라의 처참함이, 정부의 처참함이, 윗대가리들이 처참이 들통날까봐? 그래서? 죽였어요?
"고발할 용기는 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
1948년 4월 3일에 살아남은 자들은, 그 날을 목격한 자들은 고발할 용기는 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하게 지낼 뱃심조차 없다는 말로 그들의 두려움을 알수 있었다. 저 두려움을, 저 겁먹음을 나는 책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 밖에는 알 수가 없다.
"세월이 삼십년이니 이제 괴로운 기억을 잊고 지낼 만도 하건만 고향 어른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잊힐까봐 제삿날마다 모여 이렇게 이야기 하며 그때 일을 명심해 두는 것이었다."
무더기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 모습을 숨죽여 볼 수 밖에 없었던 목격자들. 그들은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 두고두고 그날을 이야기한다.
'제주 4.3' 50명 이상 집단학살 26건 확인... 26건이라고 한다.. 26건. 도대체 얼마나 죽인거야? 얼마나 죽였어야 했던거야?
작가의 고향이 제주도이고 제주 4.3사건을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든 시대를 묵묵히 글의 힘, 펜의 힘을 믿고 빌어 쓴 책일테였기에 작가 현기영 선생님의 그 묵직함과 분노가 담겨진 것이겠지.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고, 그 시대의 암울함은 지금 시국의 암울함 보다 더 했겠지.
며칠 뒤면 4월 3일이다. 제주도의 그날이 생각나는 날이고, 그들이 원하였던 추도식을 또다시 할 수 있는 날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추도식이 가능할런지...)
다시 묻고 싶다.
왜 죽였어요?
"인원과 물자를 비워버리라는 대목에서 그만 잘못 일이 글러진 거라. 작전 지역 내의 인원과 물자를 안전지역으로 후송하라는 뜻이 인원을 전원 총살하고 물자를 전부 소각하라는 것으로 둔갑하고 말아시니 말이여."
"아니, 고모부님도 참, 그 말을 곧이들엄수꽈? 그건 웃대가리들이 책임을 모면해보젠 둘러대는 핑계라 마씸. 우리 부락처럼 때죽음당한 곳이 한둘이 아니고 이 섬을 뺑 돌아가멍 수없이 많은데 그게 다 작전명령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우꽈? 말도 안되는 소리우다. 이 작전명령 자체가 작전지역의 민간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게 틀림없어 마씸."
[2020.02.14 - 2020.03.20]
- 처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