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작가 한강은 사명감을 갖고 이 책을 썼을거라 생각한다.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이 분의 동생이 더이상 모독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5.18의 그들이 더 이상 모독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써야 잘 표현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다. 읽으며 느낀 고통스러움을 담아내고 싶었고, 그들의 심정과 철학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이제서야 쓰게 되면서도 의심을 거두지는 못했다.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젯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 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 말은 그 만큼 가슴아팠단 말로 들렸고, 열기 띤 눈으로 동의를 구할만큼 고통스러웠다고 들렸다. 그들은 그런 힘겨움으로 살아내고 있었던 거다.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건 어떤 삶이라는 걸까. 어떤 삶이였을지, 그리고 지금의 삶은 어떤 삶일지 가늠이 되지도 않는다. 내가 그 고통을 어떻게 감히 언급할 수 있겠나. 그들의 그 삶을 삶은 아니었다. 내내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5.18은 전두환이, 나라가 국민을 죽인 사건이었고 그 일로 애꿎은 목숨들이 죽었으며 가해자인 전두환은 사죄없이 뻔뻔스럽게 살아있다는 것 뿐이었다. 무지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자세히 알고 싶었고, 자세한 묘사가 되어있는 것을 접하고 싶었다. 뉴스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5.18에 대해 접했으나 더 깊이 알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책을 알게 됐다.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이 저렸고,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 마다 전두환 당신은 왜 아직도 살아 있는지, 버러지 같은 당신의 그 목숨은 소중하면서 왜 그들의 목숨은 그렇게 죽여놨는지. 수많은 목숨을 죽인 당신의 그 목숨은 그렇게도 소중한지. 사과라도 제대로 해야지. 적어도 뻔뻔스럽지는 말아야지.
그들의 야비하고 치졸한 짓거리들이 공포의 고문의 되고 그로인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자살을 시도하다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 국가가 국민에게 그래야만 했는지.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한들 죽이지 말았어야 했고, 고문하지 말았어야 했다.
관을 덮은 반듯한 태극기.
나도 그게 궁금했다. 영상들을 보면 관을 태극기로 덮은채 끈으로 묶어놓은 모습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만했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그날 오후엔 유난히 신원 확인이 많이 돼,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육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그래. 그를 그리고 그 잔인했던 군인들을 나라라고 부를 수 있었겠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나라를, 나라가 나라다울 수있도록 지키고 싶어했던 건 아닐까. 그 죽음이 도육된 고깃덩어리가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건 아닐까.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처어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2020.03.21 - 2020.04.14]
-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린 고귀해.'
맞다. 고귀하다.
그들은 삶은 고귀했었고,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고귀한 삶을 살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