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소박하고 단정한 그녀의 글

by Bwriter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1).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시의 적절한 때에, 그 시기였을 때에.

선생님의 글들을 읽었다면 담담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우리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더 아렸을까?



처음으로 故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읽었다.



선생님의 소박하고 담담한 문체에서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졌고, 할머니 특유의 그 냄새가 났다. 선생님의 젊은 글에서는 엄마라는 느낌이, 선생님의 고집스러운 글에서는 할머니의 느낌이 났다. 우리 엄마처럼, 우리 할머니처럼.


할머니의 마음 같았다. 딱 우리 할머니, 내 할머니의 마음 같은 선생님의 글들 속에서 그 시대가 보였고 내 할머니가 이렇게 사셨겠구나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박완서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는 1살 차이로 31년생과 30년생이시다. 그러니 같은 시대를 나란히 하셨던 두 분이기에 느낌은 더욱더 '내 할머니' 같은 글이었다.


내 할머니의 뇌경색을 시작으로 나의 간병인 생활이 시작되면서 제일 많이 되 뇌었던 말은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전에 여자야'였다. 여자로써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치심을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여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환자복 입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채 병문안 오는 사람을 맞이하기 좋을리 없다. 환자라고 하여 추레하게 있어야 하지 않고, 나이 많은 여자라고 하여 그러한 모습이 '당연시' 또는 '그래도 돼'라는 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거였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하러 다닐 때도 할머니의 모습에 신경을 써줬고, 할머니를 보러 오겠다는 지인에게 '우리 할머니도 여자야. 이런 모습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 했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때가 생각 났었다.




- 어렸을 적에 늙은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늙어서도 사는 재미가 있을까 의심했었는데 사는 재미란 죽는 날까지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



내 할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손녀들을 보면서 "집에 있지 말고 나가 놀아! 왜 집에 있어!"이러면서 쫓아내듯 나가 놀라고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혼자서 심심할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혼자 있을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할머니랑 같이 있으려고 외출 안 하고 집에만 있기도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했던 말은 "큰거랑(나) 작은거랑(동생) 키우는 게 달라. 하나는 계속 나가고 하나는 계속 집에 있고. 키우는 재미가 있어"라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을 듣던 나이가 20대였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우리를 키우는 중이었나보다.


이렇게 어느 장소든, 어느 책이든, 누구와 있든 할머니의 흔적을 생각하게 될 때면 마냥 그리워지고 자책도 하게 된다. '더 잘 간병할 걸, 더 다정하고 더 사랑할 걸...'




- 남의 좋은 점만 보는 것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내 할머니는 "살다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거다. 그러려니 해라.",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거다. 괜찮다."라고 아빠를 위로해주거나 우리를 토닥여주곤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을 내가 아빠한테 해주기도 한다. "아빠, 그런 날도 있는거지 뭐~ 괜찮아 괜찮아."라고.


할머니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었겠지. 좋은걸 먼저 보고, 좋은점을 먼저 생각하라고. 그리고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본인도 치매 이전까지는 내내 좋게 생각하려고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리고 또 다스렸으니깐. 이해하려고 하고 또 이해하려고 하셨으니까.


할머니 이기 전에 여자, 그 이전엔 한 소녀였던 분. 젊었고, 꿈도 있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나이에 일찍이 결혼하고 자식 넷을 나아 키우고 심지어 손녀 둘까지 키워낸 존경하는 분. 그런 내 할머니를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떠올릴 수 있었다.


선생님의 자식들과 손자녀들은 할머니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할테고, 할머니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지 않을까.


난 아직도 할머니의 손글씨가 적혀 있는 작은 수첩을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의 글씨, 한 자 한 자 힘주어 쓴 그 글씨들 쓰면서 입으로 소리 냈을 그 목소리를 생각해보곤 한다.




- 소녀 적에 살던 집 앞을 지나면서 울고 싶을 만큼 센티한 감정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만 봐도 나에겐 꿈을 꿀 희망이 있다.



일제감정기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며 역사가 된 분은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닐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소설가 박완서가 아니라 작가 박완서가 아니라 할머니 박완서로써 느껴졌다.


우리들의 할머니, 여자, 소녀 그리고 아이.

순수함이 고스란히 남은 할머니, 고집스럽기도 한 할머니.

중년에 느낀 센티함을 할머니가 되어서도 간직하지 않으셨을까.

꿈 꿀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보고싶다, 내 할머니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2).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 믿었다가 속은 것도 배신당한 것에 해당하겠지만 못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믿을 만한 거였다는 것 역시 배신당한 것일 수밖에 없겠고 배신의 확률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것이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3).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 믿지 못하는 게 무식보다도 더 큰 죄악이 아닌가도 싶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4).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듯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적당히 조화된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 집 없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났다. 남부럽지 않게거두어주는 집은 있을지 모르지만 타인과 제대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족이 있는 집은 없는 아이처럼 보였고, 괜히 백화점 안을 쏘다니는 소년 소녀들의 태반이완전한 집은 못 가진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었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5).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전형적인 보통 사람을 찾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아마 밤에도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려서 꾼 것 같은 색채가 풍부한 꿈을.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6).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찌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리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7).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곧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8).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 집 안 전체가 썰렁했다. 썰렁하다는 건 실제의 기온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마음의 느낌이었고 이 마음의 느낌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 세상이 아무리 달려져도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건 억지밖에 안 되리라. 숨결이 없는 곳에 생명이 있다면 억지인 것처럼.


-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9).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 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 오래 행복하고 싶다.


-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_박완서_에세이_세계사 (3).jpg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2021.01.19 - 2021.02.05]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손녀가 잘 살아야 하는 것에

과감하게 한 획을 그어준 나의 나여사,


키워줘서, 바르게 키워줘서 고마워.

사랑 듬뿍주고 키워줘서 고마워.

나의 나여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