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그대도 나도, 살고 싶다

by Bwriter




허지웅의 글을 안 좋아한다.



한 문장의 호흡이 길다보니 문장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전작도 읽으려다 말았었다. '허지웅의 책은 안 볼란다' 했던 내가 이 책을 읽었고,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 반, 역시 부담감이 있네 반. 반반의 감정을 안고 이 책을 마무리 했다.


한참 동안 살고 싶은지에 관해 상담을 할 때, 자살기사에 내가 반응을 보이며 상담에 박차를 가할 때, 그때 이 책의 제목에 끌렸다. 살고 싶다는 농담.



-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평가하는 건 거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내막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죽은 사람뿐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

난, 자살한 사람들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말했었다. 그들의 그 절박함은 그 사람 외에는 누구도 알 수가 없으니깐. 그 절박한 심정이 어떤지 나는 아니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심리상담에서 풀어내며 나는 치료중이었다.


나야 말고 죽고 싶다는 말에 빗대어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이런 생각에 대해 의심이 있었고, 차츰 인정하는 시기에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으며,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죽고 싶다는 농담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책에도 적혀있지만 작가 허지웅은 크게 아픈 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식을 낳을 수 있다면 낳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에 주변에서 많이 만류도 했다고 한다.


난, 그의 변화가 신기했다. 몇년 전 jtbc에서 했던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방송인 허지웅은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의 결혼은 없고, 자식 역시 없을 사람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큰 병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바뀌게 하나? 그의 변화된 모습은 TV 예능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한 그의 변화된 일상은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 나왔던 때와도 달랐다.


그런 그의 모습은 뭔지 모르게 나에게도 미묘한 영향을 끼쳤다. 변치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변했는데, 나도 끊임없이 동반자처럼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먹으며 사는 내 모습에 변화가 오진 않을까? 변화를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내가 그렇게 될까? 라는 의심의 마무리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변화된, 어쩌면 아직도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뭐가 됐든, 나도 이렇게 바꼈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려고 한다.



살고싶다는농담_허지웅_에세이_책 (2).jpg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나 요즘 안정기야



이 글을 쓰기 1시간 30분 전.


동생이랑 카톡으로 대화하다가 내가 한 말이다. 집 보일러 때문에 오늘 A/S를 다녀갔는데 똑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내일 다시 센터에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 이렇게 나아지기 전 이었을 때는 격한 불안증으로 내일 해야결해야 할 일에 대해 끊임없는 생각을 하고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대로 안 해주면 어쩌지 또는 기사분에게, 지점에, 센터에 어떤 방어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지? 라며 미리 걱정하고, 미리 긴장하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처리가 되는 내일까지 불안증에 시달릴터였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나 요즘 안정기야' '화가 안나. 그냥 그런가부다 해. 저 아저씨 좀 이상하네라는 느낌뿐이야'라고 말하니 동생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 연신 온다.


난 그랬다.


미리 걱정한 들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미리 걱정했고, 걱정을 넘어서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빨리 일을 해결해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건 직성이 풀린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고작 이런 일에 내가 이렇게 불안해 해야해? 난 왜 이렇게 불안해?'라고 의구심이 들 정도의 불안증이라면 이해가 될까?


확실하다.


난 나아졌고, 계속 나아지고 있다.

나도 변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고, 변하고 있고, 변하는 중이다.



-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이 말이 가슴에 박혔다.

난, 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이미 정해져있던 거였다. 단지, 내 의지가 아닐뿐이었다. 의지를 가지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살기로 결정했다. 살아야겠더라. 내 인생이 너무 아깝고 아쉬워서. 나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너무 길고 많았어서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난 살기로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마인드로, 눈치 없는 년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

나에게, 살고 싶다는 농담은 '살고 싶다는 진담'이 되어가고 있다.


아, 그리고. 허지웅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 시간을 돌리는 방법에 관해선 알더라도 돌리고 싶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대로 잘 껴안고 살아갈 생각을 해아지 그것을 인력으로 애써 돌이킨다고해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맙소사 그걸 이 나이 먹고서야 안다.


- 나와 내 주변의 결점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태도는 반드시 삶에서 빛을 발한다. 그걸 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살고싶다는농담_허지웅_에세이_책 (3).jpg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 그런 경험들이 있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사람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크고 격정적이며 값비싼 것보다 이와 같은 경험들이 쌓였을 때 방향감각이 생기고 등이 곧게 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대부분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반면 실패는 악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직면한 실패가 자연스런 결과로서의 실패인지, 혹은 의도에 의한 음모와 배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나라는 인간의 형태는 눈앞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다.


-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살고싶다는농담_허지웅_에세이_책 (4).jpg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 내 앞의 불행을 이기는 데 최소한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능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선언이었다. 당신에게 그런 다른 종류의 선언일 수 있고 어떤 표정일 수 있으며 특정한 여가 호라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말 그대로 달아오른 마음이 식으 ㄹ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만 통하는 객관화의 방법이, 사건과 나를 분리시켜주는 방아쇠가 반드시 있다. 여러분은 그걸 찾아야 한다.



살고싶다는농담_허지웅_에세이_책 (1).jpg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2021.02.22 - 2021.02.28]


영화 보기가 취미가 아닌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써


책에서 영화에 빗대어 말을 풀어낼 때

읽음의 지루함을 느꼈다.


영화를 봤어야 했나? 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 부분들은 자세히 읽기 보다는

핵심을 찾아 읽었다.


이래서 이런 아쉬움으로

내가 이 책을 반반의 느낌으로 읽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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