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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후기

윌리엄 폴 영 <이브>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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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다시피, 상당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을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 처음에 짐작은 '창세기의 내용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것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보면 그 이야기는 맞습니다.


사실 저는 작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사전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전작이나 어떠한 종류의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종교적인 글을 대하면서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다른 분들께서도 종교적이지만 그렇게 거부감은 없었다는 말씀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뭔가 모호하게 시작됩니다. 작가가 설정을 만들어둔 것 같은데 그 설정 자체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읽다 보니 이 작품의 세계가 3중의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두 가지의 세계는 환각 속에서의 가상의 세계인 것이고, 사실은 이곳에서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것이었죠. 딱히 이해를 하려고 하지는 않아도 그냥 작가가 설정해놓은 대로 주욱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읽기는 어렵지 않았고, 또 몰입도도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런 작위적 설정에 좀 취약한가 봅니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아서일까요, 마치 연극의 세트 같은 느낌이 들고, 상징적인 의미와 등장인물들을 극 중 이름, 명칭을 계속 강조하는 그러한 것이 집중력을 좀 떨어뜨리는 것 같았어요.


물론 그러한 것이 개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각각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인 '릴리'에서 '릴리스'를 먼저 떠올렸는데 본문 중간 즈음에서 릴리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혼란스러웠습니다. 작가가 정통 기독교 주의자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릴리스는 성경에서는 나오지 않는, 유다의 전설에서 나오는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이었죠. 작가가 왜 릴리스를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책의 뒷부분에 갈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주인공이 이브가 아니라 릴리스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결국 작가는 '애초에 릴리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릴리스라고 생각했던 것은 스스로 죄책감을 갖게 된 주인공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합니다. 그 죄책감이란 아담이 짓게 된 원죄를 막지 못한 것, 그리고 아담을 돌아서게 만든 것, 아담을 에덴으로부터 추방하게 만든 것 등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릴리스의 잘못인 건지, 환각의 세계에서도 릴리스는 그저 아담과 이브의 '사건'의 목격자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환각이었든 실제였든 고통은 릴리의 몫이었지요. 또한 그 잘못이란 것이 릴리의 실제의 경험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사실 끝까지 좀 혼란스럽긴 했어요. 릴리는 생모에게 버림받고 (버림받은 정도가 아니라 팔아넘겨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목숨만 건진, 세상에 대한 증오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러한 가운데서도 릴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결론적으로는 치유의 과정을 통해 릴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겪게 된 환각, 특히 마지막에 '영원한 이'에게 안기면서, 그리고 '마더 이브'를 통해 그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감동을 주는 요소인 것 같은데 제게는 그 부분도 좀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종교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혹은 계속 머리로만 이해를 하고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작가의 작위적 설정, 그리고 뭔가 모호한 상황에서 갑자기 종교적인 사랑으로 승화하려는 그 시도가 제 감정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아무래도 윌리엄 폴 영이 저와는 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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