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경에 작성한 글 입니다만, 책 표지는 최근 개정판의 것입니다. 제가 읽었던 구판의 표지를 찾기 어렵네요...
1월 초부터 읽기 시작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2개월 만에 다 읽었습니다. 초반엔 빨리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연산군일기' 이후로는 좀 지루해져서 진도가 더뎌지더니 선조 대에 이르러 당쟁의 본격화, 선조의 모습 등에 짜증이 유발되기 시작했죠. 이후로는 거의 계속 당쟁 얘기... 그래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꾸역꾸역 읽었네요.
마지막 19권과 20권은 사실상은 '조선왕조실록'이라기보다는 그냥 구한말의 조선 상황을 정리한 건데, 원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정통 실록으론 포함시키지 않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죠. 내용 자체도 부실하기도 하고요. 작가도 그 부분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실록 자체에 충실하고자 조선사에서 중요했던 인물들 혹은 사건들이 실록에는 없다는 이유로 많이 빠져 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기록 자체가 부실해지면서 작가가 넣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실록엔 없지만 정황적, 혹은 다른 기록에 근거하여 '사실상 그러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죠.
물론 실록의 기록 자체를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실록은 왕의 생존 당시 기록을 정리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편집자들의 성향이 들어가 취사선택, 심지어 다시 펴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조선왕조실록의 특성상 그 기록이 왕과 신하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예와 의리와 논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유학자(왕은 물론 신하와 유생을 막론하고)들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사소한 것들까지 물고 늘어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며 참 덧없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죽는, 죽이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죠.
많은 사화, 역모, 왕권 찬탈, 반정, 왕위 계승 논란, 추숭 등등...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건국초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약 518년의 역사 동안 그러한 사건들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네요. 그게 다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역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은 됐을지언정, '그래서?'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역사를 안다는 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측면이 있는데 과거의 일들을 통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는 역사를 보면서, 예전에는 '역사적 가정'을 많이 해봤었거든요. 아마 많은 분들이 '만약 그때 ~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을 텐데요, 전 지금은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역사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고, 설사 작은 부분에서는 바뀌었더라도 큰 흐름에서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역사는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작가인 박시백 화백이 10년 이상의 공을 들여 만든 작품 속에는 그의 사관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실록의 내용을 전하기는 하지만 곳곳에 자신의 의견을 간략하게나마 표현하고 있거든요. 어떤 내용에서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본인의 시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실록의 내용에 대해서 역사학자들도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겠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그가 그런 자격이 있는가 하는 얘기도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이런 대중서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트집은 의미 없다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다른 역사서도 저자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잖아요. 그에 대해선 자격보다는 역사를 보는 안목이 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가 일관성 측면에선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어) 약간 아쉬움은 있지만 그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부록에 있는 연표를 보면 무려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그가 일일이 기록한 내용들이죠. 그걸 일일이 다 보고, 추리고, 정리해서 그리는 과정이 과연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과연 어떠한 나라였는지, 저는 지금도 확실하게 답을 하진 못하겠어요. 그동안 여러 편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었고, 조선사에 대해서 읽었음에도 말이죠. 그건 역사가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어떤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선 부족하나마 의견을 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해도, 어떤 사건의 배경이라든가 과정 중 몰랐던 부분에 있어선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긴 해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중학생 이상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어른들이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