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을 읽었습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은 재작년에 <나라 없는 나라>를 읽어봤던 터라 그 문학상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었으나, 특히나 제일 먼저 수상한 작품이라 하니 평작 이상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최문희 작가는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문체를 보니 예사롭지는 않았습니다. 작품 초반부에는 다소 설명적인 부분, 불필요하다 싶은 부분에서의 세세한 설명이 있어 과한 친절(?)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것은 덜 합니다.
이 책은 허초희, 즉 난설헌이 결혼에서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짧은 시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비통했어요. 마치 조선판 <82년생 김지영>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니, 그보다 더 했죠. 조선 시대에 어느 여인의 삶이 그와 다르지 않았을까만, 재능을 갖고 태어나고 자랐던 한 여인의 삶은 그로 인해 더욱 비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난설헌의 자취를 좇아 허구이긴 하지만 다시 복원해냅니다. 하지만 실제의 사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그미'의 감정이 오롯이 전달되는 듯해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난설헌의 심리묘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가부장적 시대의 피해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난설헌을 데리고 왔지만, 어쩌면 그건 노령의 작가 자신의 삶이 투영된 것 이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된 시집살이, 시모의 박해, 남편의 외면 등 사랑받지 못한 여인으로서의 삶, 거기에 힘겹게 낳은 두 아이의 죽음, 사랑했던 친정식구의 죽음과 몰락... 그 모든 것이 그미에겐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썼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도교에 더욱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미의 삶과 그미의 작품이 적절하게 한 데 어우러져 그 비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난설헌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미의 작품에 대한 작품성, 그리고 진위 여부도 아직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그미의 작품이 당시로서도 그렇고 현재에도 여류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줌에 있어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에 괜찮은 작품을 만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비통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카타르시스는 없었어요. 그걸 해소하지 못한 채 마음속 하나의 멍울처럼 맺혀버린 것은, 비단 시간을 넘어서도 여전한 사회의 모순에 기인한 것이겠지요. 특히나 이런 류를 접하게 되면 외동딸을 키우는 아비의 입장에서 더욱 감정이 이입됩니다.
p.s. '그미'는 '그녀'의 문학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모두 '그미'로 나와서 저도 그렇게 써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