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후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나사의 회전>, 원제는 <The Turn of the Screw>.


저작권이 만료된 책이라 우선 영문으로 다 읽었습니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참으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문장 구조 자체가 삽입 구문이 너무 많은 데다 평이하지 않고, 따라가기가 쉽진 않았어요. (200개가 넘는 하이라이트를 쳐가면서 읽었네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사실 이보다 심한 것들이 많아요. 


He had been left, by the death of their parents in India, guardian to a small nephew and a small niece, children of a younger, a military brother, whom he had lost two years before.


게다가 읽다가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기를 되풀이하다 보니 두세 번은 읽은 듯한 느낌이에요. 무슨 TOEFL 독해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집중해서 읽어본 것도 오랜만이네요. 킨들의 X-ray 기능도 처음으로 이용해 봤어요. 등장인물들 설명 및 각 챕터별 요약된 클립을 보여주니 조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은 소감을 얘기하자면, 저는 '유령이 있다'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저는 주로 밤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읽었거든요. 그때 어둡고 조용한 침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들긴 하더라고요. 예전에 영국에서 봤던 고성들이나 박물관에서의 침실 분위기 같은 게 연상이 되니 대충 분위기가 어떠할 거라는 건 짐작이 됐어요.


게다가 작가가 그러한 것을 노리고 썼으니 더 그랬겠지요.


저는 끝까지 읽으면서 이러한 스토리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저택을 관리하던 Quint는 망나니 같은 성격에 난봉꾼이기도 했는데 가정교사로 있던 Jessel을 겁탈하였고, 그 충격으로 Jessel은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정신이 이상해진 후 자살을 한다. 


유령이 된 그녀는 복수를 위해 Quint를 찾아가 술 취해 귀가하던 Quint를 놀라게 하여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사망하게 한다. Quint 역시 유령이 되어 집 주변을 맴돈다. Jessel의 유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이들도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그것을 비밀로 하고 있고, Jessel의 유령이 아이들을 홀려서 호숫가로 가게 한다든가 정원으로 나가게 한다든가 하는 것 같습니다)


이후 새로운 가정교사로 주인공이 오게 되었고, 집안에 있는 두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실 Jessel은 두 아이를 모두 죽이려는 목적이 있었으나 주인공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된다. 


Flora를 죽이려다 실패한 Jessel은 Flora를 일단 단념하고 Miles를 죽이려 하지만, Quint는 그러한 Jessel로부터 Miles를 지키려고 했다. 이를 주인공은 그동안 Quint의 유령이 Miles를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마지막에 Jessel의 유령은 주인공에게 빙의되고 결국은 주인공을 통해 Miles를 죽인다.


아마 다른 분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황당한 이야기이고, 근거는 별로 없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재밌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유령이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는 어렵지만요. ^^;;


제목이 왜 <나사의 회전>일까 싶었는데 본문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두 번 나오더군요. 원문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I quite agree-in regard to Griffin's ghost, or whatever it was-that its appearing first to the little boy, at so tender an age, adds a particular touch. But it's not the first occurrence of its charming kind that I know to have involved a child. If the child gives the effect another turn of the screw, what do you say to TWO children??" (본문 중 line 31)


I could only get on at all by taking "nature" into my confidence and my account, by treating my monstrous ordeal as a push in a direction unusual, of course, and unpleasant, but demanding, after all, for a fair front, only another turn of the screw of ordinary human virtue. (본문 중 line 1505)


첫 번째 인용 문단에서는 이 작품에서의 공포감을 나사로 죄어가듯이 조금씩 죄어가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 것 같고, 두 번째 인용 문단에서는 주인공이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명목의 나사를 죄는 행위로 나타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아마존 독자들의 하이라이트가 가장 많이 쳐져 있다고 나오더군요)


아무튼 생각보다 읽기 어려웠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사건 자체는 심플했던 것 같고요, 다만 주인공의 심리묘사에서 느껴지는 세밀함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가의 능력으로 인해 작품성이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이후에 열린책들 번역서로 다시 한번 더 읽었습니다.


영어로 읽었을 때와 한글로 읽었을 때, 이해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받아들여지는 느낌에서는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후기에서 원문을 몇 가지 인용했습니다만, 원문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고, 삽입 구문이 너무 많아서 난해한 느낌인데요, 이제 일단은 가정교사인 주인공이 직접 썼다는 전제하에 보면, 상당히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걸 번역하면서 좀 더 정돈된 듯한 느낌으로 하다 보니 (그래도 이해가 안 되고 문장이 이상하지만, 이건 그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니까요)  원작의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읽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 때문에 공포감을 제대로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가진 의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분들께서도 공통적으로 가지셨을 것 같은 의문에 대한 의견들을 제시해 봅니다.



1. 왜 제목이 <나사의 회전>일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왜 제목이 <나사의 회전>일까 하는 점입니다.


일단 포인트는 '나사'인데요, 나사는 영어로 'screw'이고, 이것은 기계적으로 볼트와는 다릅니다. 나사나 볼트나 둘 다 결합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볼트는 이미 구멍이 나 있는 부분에 끼워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너트와 같이 이용되는 경우가 많죠. 반면 나사는 앞이 뾰족하게 되어 있고, 긴 삼각뿔 모양이라 '박혀' 들어간다는 느낌이 강하고, 또 '조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즉 회전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조이는 것이죠. 이는 강한 힘(토크)을 필요로 하는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본문에서는 공포감을 죄어 들어가는 의미, 그리고 인간이 정한 어떠한 원칙에 끼워 맞추기 위해 헐거워진 듯한 부분을 억지로 힘을 주어 조이는 것 등 두 번에 나뉘어 나옵니다. 두 번째 인용에서 그 '힘'은 가정교사의 인위적인 힘이고,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도덕성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삼촌에 대한 연모의 정,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즉, 작가는 그 힘, 그리고 그 작용으로 인해 조금씩 조여져 가는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저는 상당히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볼트'의 회전이라고 했으면 좀 맥 빠졌을 거예요. ㅋ



2. 유령은 있는가

저는 여전히 '유령은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유령이 없다면 가정교사가 유령의 외모에 대해서 묘사하는 부분이 잘 설명이 안 되죠. 이건 다른 분들도 동의하실 겁니다. 그리고 유령이 밤낮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이건 유령이 밤에만 나타난다는 선입견을 깨게 만드네요. 


밤에만, 혹은 어두울 때만 나타나는 유령과 밤낮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유령의 차이... 이로 인해 사람들이 여교사의 환각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유령의 존재에 대해서는 플로라나 마일스 역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본인들이 직접 본 것인지, 여교사의 영향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설사 직접적으로 보았다는 얘기가 없더라도 유령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3. 유령의 목적은 무엇인가

위에서도 저의 상상이 가미된 글을 말씀드렸지만, 저도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유령이 있다면 그 유령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전의 가정교사였전 제셀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아이들이 있는 이 시골집까지 와서 유령으로 다닐 이유는 없는 거죠. 아무래도 시골집에서 무언가 원한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은 아이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퀸트와의 관계일 수도 있는데 저는 퀸트에 대한 원한이 있는 것으로 봤고, 퀸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제셀의 유령이라고 봤던 거지요.


다만, 퀸트의 유령이  아이들의 가디언이라고 한 건 단지 제 상상일 따름이고요, 제셀의 유령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퀸트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유령이 되었는가 싶은데, 단지 제셀에 의해 유령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유령이 되어 떠돌 필요는 있나 싶었던 거죠. 어떤 원한이 있는 대상이 있거나 지켜야 할 대상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가장 그럴싸했던 것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거죠. 그러다 보니 저런 상상을 하게 됐어요.


사실 퀸트는 생전에도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고 친했던 것으로 돼 있으니까요. 비록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랬다 치더라도요.


제셀의 유령이 플로라를 노리고, 퀸트의 유령이 마일스를 노린다고 한 것은 주인공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지,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긴 합니다.



4. 여교사는 정말 미친 것일까

유령이 없었다면 여교사가 미쳤다는 주장에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유령이 있다면 여교사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비록 다른 사람들이 유령을 못 봤다고 해도 유령의 존재를 인지했고, 그것을 간접적으로라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졌거든요. 


다만, 플로라가 사라져서 그로즈 부인과 함께 찾으러 다녔을 때 플로라나 가정부가 유령은 없었다고 했던 것이 유령이 없이, 여교사가 그동안 환상을 본 것으로 만든 것 같고,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모호하게 그리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반면, 마일스는 유령의 존재에 대해서 좀 더 믿는 것처럼 나오는데 이는 여교사에 대해서 좀 더 신뢰감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5. 여교사와 마일스 사이에 애정관계가 있었을까

많은 분들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인데요, 마일스와 여교사가 불건전한 관계였다, 애정관계였다, 심지어는 여교사가 아동 성도착증이 있다고도 하셨지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보이진 않았습니다. 


여교사가 아이들을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좀 더 이뻐했고, 정말 사랑스럽게 여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성적인 코드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다만, 마일스가 사춘기 무렵 정도인 것 같긴 해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주인공의 애정표현을 좀 더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한 부분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싶어요.


번역본에서 그러한 점이 더 나타는 것 같은데, 원문에서 받은 느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6. 마일스는 학교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퇴학당한 것일까

이 점도 불분명합니다만, 마일스의 말에 따라 '허용치를 넘어선 불건전한 말을 친한 사람들에게 했다'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욕이 될 수도 있고, 성적인 말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수준의 '선언'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그 정도의 결정을 내릴 정도라면 일반적인 수준은 아닐 것 같아요. 그것은 죽은 퀸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의 추측은 좀 어렵네요. 어쨌든, 마일스의 말 만을 생각할 때는 '행동'에 의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폴 칼리티니 <숨결이 바람 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