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여기저기서 '모모'라는 노래가 많이 나왔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 혹은 윗 연배 들은 기억할 수도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아요.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에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과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만준 <모모> 중에서
몇 년 전까지도, 저는 여기서 나오는 모모가 당연히(?) 미하엘 엔데가 지은 동화 <모모>의 주인공 모모인 줄 알았습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아마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워낙 유명한 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저처럼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모모는 철부지'이고 '모모는 무지개'라고 한 건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그 모모가 딱히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다 몇 년 전에야 이 노래가 에밀 아자르(본명은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모티브로 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만 알고 있다가 얼마 전에 문학동네 북클럽 가입하면서 웰컴 도서목록 중에 포함되어 있기에 선택해서 읽어보았네요.
1950~70년대에 프랑스에서 살아가던 소수자(여러 의미에서)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도입부부터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상했던 것을 완전히 빗나갔고, 설정도 그렇지만 다소 불편한 묘사와 표현들이 많아서요. 그래도 이 책에 대한 추천이 많았던 터라 일단 끝까지 읽어보자 싶었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진흙 속에서 진주 찾기와 비슷했습니다. 그 진흙을 헤집는 과정이 다소 불편했을 따름. 이 책을 인생 책으로 추천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한데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랄까요.
또한 이제야 저 노래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네요. 핵심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꽤 철학적인 내용의 책과 꽤 철학적인 내용의 노래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자기 앞의 생>이 있는데 원작과는 많이 다릅니다. 플롯도 비슷하고 등장인물은 거의 그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라와 시대, 설정이 좀 달라요. 원작을 기대하신 분은 좀 실망하실 수도 있는데 뭐 주제는 비슷하니까요. 좋게 말해 원작을 재해석했다고 할까요?
그리고 생각난 김에 <모모>도 다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노란색의 표지와 갱지 느낌의 종이는 옛날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한 건지 아니면 예전 도서를 그대로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시 읽어보니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이 나면서도 또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들도 많았네요. 어릴 땐 그냥 단순히 시간도둑 나오고 모모가 그 시간들을 되찾는 내용 정도로만 기억했는데 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과 상상력들이 놀라웠습니다. 어른이 되어 읽어서도 좋은 내용인 것 같아요.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르겠네요.
여담으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1973년에 독일에서 발표되었지만 국내에는 1977년에 최초 번역되었습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1975년에 프랑스에서 발표되었고 국내에는 1976년에 최초 번역되어서 이 작품이 국내에는 좀 더 일찍 소개된 셈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김만준 씨의 노래 <모모>는 1978년 제1회 전일 방송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이었다는데요, 당시로서는 신간이기도 하고 인지도도 별로 없던 책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게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