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빈의 <Science: A Histroy>가 국내에는 <과학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1년쯤 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구매해서 받았을 때 그 두께에 놀랐네요. 책 소개를 보기는 했지만 1000페이지에 가까운 두께는 손에 잡히기 전에는 그 느낌을 체감하기 어려웠던 거죠. 이걸 한 권으로 하지 말고 두 권으로 분책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일단 책이 너무 두꺼우니 손에 들고 읽기도 부담스럽고 혹시라도 책이 갈라질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읽다 보니 그러한 것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고, 이 책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이후, 즉 15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과학사를 다룬 책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현재까지를 크게 5부로 나누어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업적을 그려내고 있는데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그리고 그의 하위라 할 수 있는 지질학 등도 포함) 등 다양한 분야를 훑고 있습니다. 시대순으로 가면서 여러 분야를 함께 언급하고 있기에 조금 맥락이 끊기는 면도 있지만 저자는 그러한 것도 매끄럽게 풀어냈습니다. 다만 분야별 균형은 아쉬운 면은 있어요. 특히 생물학 분야는 현대로 오면서 더 그러했습니다.
저자인 존 그리빈은 천체물리학 박사인만큼 전공인 천체물리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과학 전반에 대하여 식견이 있으며 빼어난 글솜씨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에게 과학 교양을 많이 소개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존 그리빈의 다른 저서들도 읽어본 바가 있어서 일단 믿고 읽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번역자 역시 최대한 정확하고 명확하게, 또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곳곳에 있던 역자주 역시 내용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네요.
이 책은 우주로 시작해서 우주로 끝이 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과학사에 미친 영향이 크기에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현대의 과학 분야 중에서 우주로 마무리를 한 것은 아무래도 저자의 전공분야이기도 할 것이지만 이 우주에서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온 과학 체계를 가지고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저자는 과학은 '혁명'이 아니라 '진화'해 온 것이라는 견해를 보입니다. 이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과는 다소 대치되는 면이 있는데 과학 체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것이고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시기의 차이는 조금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발견하거나 발명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이점은 과학에 대한 저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부분이네요.
실제로 19세기 들어서는 같은 현상에 대해 동시에 여러 과학자에 의한 발견과 보고가 일반화되었습니다. 물론 그중에 더 정확하고 나은 모델, 이론들이 받아들여졌지요. 현재의 과학은 대규모의 팀을 조직하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예전과 같은 낭만(?)의 시기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은 전기적 형태도 띄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19세기 정도까지의 과학자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자세하게 일대기를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잘 모르고 있던 과학자들도 나옵니다. 저자는 그들 각각에 대하여 잘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정정을 하고, 감춰진 부분은 그것이 추악한 부분이든 알려져야 할 부분이든 드러내며 재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들을 보며 각각의 인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네요.
그러나 이런 내용까지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그려진 면도 있긴 한데 저자의 욕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 때문에 페이지 수가 많아지기도 했겠죠.
하지만 그러한 것도 19세기 후반, 20세기 들어서는 상당히 간추려집니다. 20세기 들어서는 개인의 전기는 짧아지고 대신 이론적인 부분들에 기여한 사람들이 다수 열거되니까요. 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그러한 이론들이 어느 몇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도 하니까. 게다가 과학자의 수 역시 인구증가율보다 훨씬 더 늘어나기도 했고요. (어느 정도까지는 인구증가율에 비례했다지만)
20세기 이후의 과학은 한 챕터 정도로 간추려져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나마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이야기는 별로 없고 분야도 한정되어 있네요.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이 10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이면서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바람으로는 20세기 이후를 좀 더 보강해서 증보판이 나오거나 혹은 20세기 이후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과학사에 흥미가 있다면, 혹은 궁금하다면 추천할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