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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Feb 26. 2024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한마디로 GEB는 어떻게 생명이 있는 존재가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는 매우 개인적인 시도이다. 자아란 무엇인가? 어떻게 돌이나 흙처럼 자아가 없는 물질로부터 자아가 나올 수 있는가? “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러한 것들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시인 러셀 에드슨이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불안과 희망의 흔들거리는 머리통”과 연관 지어서만 나타나는가? 즉 솜털로 덮이고 관절이 있는 두 다리 위에 얹혀져 세상을 어슬렁거리는 움직이는 좌대 위에 놓인 단단한 보호껍질에 들어 있는 끈적거리는 덩어리와 연관 지어서만 말이다. 


속칭 'GEB'라고 불리는 책. 그 난해함만큼이나 악명이 높았던 책. 언젠가는 읽으리라 맘먹었던 책이다.


이 책의 정식 제목은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이며, 원제는 <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이다. 나중에 역자후기에서 안 사실인데 '영원한 황금 노끈'에 해당하는 말의 앞글자는 각각 E, G, B이며 이것도 '괴델, 에셔, 바흐'의 G, E, B에 대응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말이었다.


이미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언어유희는 시작된 것이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독자가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 싶다. 더군다나 번역본에서는 그러한 것을 알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번역자들이 그것을 살리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렇게 GEB와 EGB로 이루어진 제목 때문인지 목차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GEB, 2부는 EGB다. 이것 역시 작가가 의도한 바일 텐데 GEB는 괴델을 강조하기 위한 것, EGB는 에셔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앞서 말한 대로 '영원한 황금 노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또한 1부는 1~9장까지, 2부는 10장부터 20장까지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구분한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1부와 2부의 내용이 그렇게 확 바뀌는 것은 아니고, 1부에서 나왔던 내용이 2부에서도 나오고 또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부에서는 좀 더 생물학적인 부분과 전산 알고리듬,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어서 내용상으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각 장은 아킬레스와 거북의 대화(+다른 인물들)로 시작된다. 각 대화에도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는 음악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 또한 이 대화는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인데 각 장에서 나올 내용들을 미리 소개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고 정신 사나울 정도였는데 이는 저자가 노린 것일 수도 있겠다. 원어민이나 혹은 루이스 캐럴식의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원서에 도전했다가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래서 작가가 뭘 말하려는 거지?'였다. 사실 이 책은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쓴 책이라 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듯하다. 이점은 저자도 익히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저자도 20주년 기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흔히 GEB라고 부르는 이 책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Gödel, Escher, Bach : an Eternal Golden Braid)』은 정말로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가?  내가 이 책의 초고를 펜으로 쓰기 시작한 1973년 이래로 이 질문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가 무엇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지 묻고는 했지만, 나는 그것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광범위한 혼란은 수년간 나에게 매우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본문에서 내 목적을 되풀이하여 말했다고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충분히 자주, 또는 충분히 분명하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 번 더 그렇게 할 기회를 가졌으므로─그것도 책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한다. 왜 나는 이 책을 썼는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주요 주제는 무엇인가?
다시 이상한 고리로 돌아와 보자. GEB는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확신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이상한 고리”라는 개념이 우리 의식 있는 존재가 존재 또는 의식이라고 부르는 신비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의 목적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무려 20년이나 지나서야) 서문을 작성했는데 그의 글을 보고서야 이 책의 목적과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 책의 구성을 각 장 별로 (대화 포함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이건 책을 읽기 전에는 감이 안 잡혔는데 완독 후 다시 보니 정리를 잘해둔 것 같고, 개념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 서문과 책의 구성, 그리고 역자후기들은 꼭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고, 기회가 된다면 책 전체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고, 또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특히나 제목에서 괴델, 에셔, 바흐 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수학 (특히 수리논리학), 미술,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고 (그나마 미술은 주로 에셔나 마그리트의 작품 위주로 언급되고, 음악도 바흐의 대위법과 카논 위주로 언급되기에 난이도는 덜 하다), 여기에 생물학, 물리학, 프로그래밍, 알고리듬, 철학, 문학,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저자가 이끄는 대로, 인내심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논리체계는 수리논리학이나 괴델이 자신의 불완전성 정리 증명에서 적용한 방식이 아니고 저자가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라 응용하기는 어렵지만 괴델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이를 위해 1장에서부터 MU-수수께끼, MIU-체계 소개부터 시작한다. 이것도 그가 만든 체계지만, 문자열, 정리, 공리, 추론규칙, 도출, 형식체계, 결정절차 등과 같은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후 pq- 체계,  활자형수론 (TNT) 등이 나오는데 이것들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그의 논증을 따라갈 수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겠다. 일단은 개념 정도만 이해해도 괜찮고, 나중에 다시 도전해 볼 수도 있을 테니. 


그 이후 TNT를 이용해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한다. 우회적인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괴델의 증명방법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고, 마치 불닭볶음면을 비빔면 정도로 순화한 맛이랄까. 그렇다고 안 매운 건 아니지만 그냥 맛만 보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그 내용들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고 그의 논리 전개에 설득당한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괴델이나 수리논리학에 대한 부분은 사실 전체 분량에서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고, 에셔나 바흐에 대한 얘기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머지 부분들은 여러 가지 잡다한 얘기들이 채우고 있다. 그중에서는 일본 선사들의 선문답 얘기도 있고, 유전자 발현에 대한 것을 텍스트로부터 활성화하는 것과 비교해서 보여주는 내용도 있었다. 앞서 서문에서 얘기한 대로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생겨났고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뒷부분은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이다.


비유를 굉장히 많이 들고 있고, 같은 원리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비교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재귀, 동형성, 층위, 번역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들이 서로 순환하듯 보이는 것이 이 책이 핵심 주제일 것이다. 그러한 것을 세 사람의 작품(?)들을 예시로 해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일 테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흐름은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할 수밖에.


그러다 보니 산만한 느낌이고 주제가 모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각 장의 앞부분의 대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말장난이 심한 편이었다. 나도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역자들도 그 의미나 언어유희를 살리느라 애를 먹었다는데 그럼에도 살리지 못한 부분들은 역주가 상당히 많았다. 원서로 읽었더라도 아마 그것들을 다 캐치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분량이 많고 주제의 난해함, 다방면의 내용, 언어유희 등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만큼의 책은 또 아닌 것 같다. 꽤 흥미롭고, 저자의 시각도 신선하고 통찰력이 돋보인다.


다만 이 책이 1979년에 처음 나왔으니 이제 45년이 되었는데, 기술적인 부분이나 과학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시대에 많이 뒤처져 있긴 하다. 특히 인공지능에 대한 부분은 더 그렇다. 아직 컴퓨터가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기기 전의 이야기니까. 


앞의 사안들을 좀 더 연계시켜 보도록 하자. 나는 기호의 창조, 조작 및 비교와 결부된 다수의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제시했다. 그것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이탈과 연관된다. 즉 개념들이 때로는 조밀한 성분들로, 때로는 느슨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 발상이, 내포된 맥락들(프레임들)의 상이한 층위들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느슨한 성분들은 제거되어 쉽게 교체될 수 있으며, 이것이 상황에 따라서 “가정법 즉석-재생”, 강제된 일치 또는 유추를 창조할 수 있다. 두 기호의 융합은 개별 기호의 일부 성분은 제거되고 나머지 일부 성분은 보존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창조성의 기계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창조성의 기계화는 명사 모순이 아닌가?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진짜로 모순적이지는 않다. 창조성의 본질은 기계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창조적 행위는 기계적이다. 
무작위성이 창조적 행위의 필수성분이라는 견해는 통념이다. 이 통념은 맞는 말이겠지만, 창조성을 기계화할 수 있다거나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세계는 무작위성이 거대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당신이 세계의 일부를 당신의 머릿속에 반영한다면, 머리의 내부는 그 무작위성을 약간 흡수한다. 그러므로 기호의 점화 패턴은 당신을 가장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이는 경로들로 이끌 것이다. 
이 장을 끝내면서 나는 인공지능에 대한 열 개의 “질문과 추측”을 제시하고 싶다. 그것들을 “답”이라고 말할 만큼 대담해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의 개인적인 견해들이다. 내가 더욱 많이 배우고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서, 그 견해들은 어떤 점에서 바뀔 것이다. 


문득, 저자가 현재의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지만 그러한 내용도 이 책에 있기는 하다. 당시에 미래를 예상한 것이 있었는데 그때와 지금도 생각은 여전할까.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책이 아직도 필독서(?)로 각광받는 이유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그의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개정판은 그 뒤로도 나오진 않았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이 있으니 더 찾아봐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굳이 읽어야 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흥미로운 책이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다. 그래서 쉽게 추천은 못하겠지만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나도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천여 개의 하이라이트와 백여 개의 책갈피를 만들어 놨지만 전체를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라서 더 그렇다. 그렇게 되면 아마 지금과는 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그때는 각 장별로 요약도 해볼까.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한 얘기인데, 이 책은 국내에 1999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박여성 교수가 초판 번역을 했었는데 두 권으로 나뉘어 있었고, 독자들로부터 번역의 질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17년에 개역판이 나왔는데 한 권으로 합쳤으며, 안병서 번역가가 참여하여 번역이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오역이나 잘못된 부분도 많이 바로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역판의 경우에는 번역 논란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다. 나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었는데 아무래도 용어나 표현의 번역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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