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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김훈 <남한산성>


*2007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책 표지는 초판본의 표지이고 제가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먼저 질문. 나는 병자호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국사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도 그건 학창 시절에 시험을 위해서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실 병자호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청나라가 쳐들어와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는데 결국 청나라에게 패해서 청나라 임금에게 세 번 머리를 땅에 찧었다는 얘기뿐. 하지만 병자호란이 왜 일어났는지, 인조는 왜 남한산성으로 가야 했는지 그러한 정황은 알지 못했다. 


그러한 배경지식에 대한 빈약함으로 인해 첫 장을 펼쳤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부터 대뜸 청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서 한양을 향해 진격한다니, 그리고 인조는 '또 강화도로 가야 하냐'라고 하니 말이다. 그 '또'라는 단어로부터 '그럼 언제 강화도로 간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고려 시대 때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강화도로 갔던 일을 얘기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무지 때문이었고 그 '또'라고 하는 건 이전의 '정묘호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묘호란 때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였으나 패배하여 청과 '형제의 의'를 맺었다. 


하지만 청은 조선에게 '군신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였고 척화파와 주화파 사이의 대립과 여러 가지 내부적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조선의 어정쩡한 태도에 불만을 품은 청이 다시 군사를 끌고 내려온 것이 '병자호란'이다. 즉 병자호란은 정묘호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보였던 광해군을 척출하고 권좌에 오른 인조였지만 재임 중 두 번이나 외침을 받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굴복을 한 임금이 되어버렸다. 만약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역사에서의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하여 강화도로 가려다가 길이 막혀 계획도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그 아둔함이 결국 47일간의 혹독한 시련의 날들을 지내게 하였으며 결국 삼전도의 치욕을 맞게 한 것이다. 그 47일간의 기록. 그것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인조편의 정말 담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책의 뒤편에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이 실려 있다) 


나는 적어도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대등하게 싸우다가 피신한 걸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고, 지레 겁먹고 도망쳤다가 오도 가도 못하다가 고생만 하고 항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에 있으면서도 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막막한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너무나 어처구니없었지만 더 기가 막힌 건 그러한 상황에서도 명분과 의의를 둘러싼 당파 싸움은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니. 그러한 와중에 인조는 얼마나 고뇌의 시간을 보내었을까. 


인조의 고뇌는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계속 되풀이되는 것 같다. 과거형은 현재형이 되고 미래형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는 알 수 없지만 늘 명분과 실리는 있기 마련이었으니.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인조와 신하들 뿐만 아니라 역사에 묻혀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 민초들이 등장한다. 대장장이 서날쇠라든가, 나루터의 노인, 그의 딸 나루, 그리고 번초를 서던 백성들. 그들은 그저 살아야 한다는 목적 하나와 전쟁(같지도 않은 전쟁)이 끝나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의 가장 치욕적인 그 순간이 그들에겐 해방이자 새로운 삶의 희망을 안겨주던 순간이었으니.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러한 상황이 더 실감 나게 와닿는 건 그 지명들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그 땅, 서울 땅에서 그러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건 그저 먼 나라, 먼 옛날의 일이 아닌 마치 얼마 전의 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왠지 모를 전율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김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의 전작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도 읽었지만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회의적이고 무거운 분위기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존재와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는 이 소설에서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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