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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5. 2022

최은영 <밝은 밤>


최은영 작가의 전작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은 단편집이었다. 각각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있던 작품들은 최은영이라는 작가에게 매료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 작가도 포함하게 되었다. 


담담하고 서정적이지만 쉽게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는 문체, 사람의 내면을 살짝 들춰보듯이 보여주는 묘사들. 특히 후자의 경우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마치 젖은 스펀지를 살짝 누르면 물기가 머금어져 나오는 정도의 강도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힘의 조절은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작용하여 그 강약에 따라 마음의 강도도 달라졌었다. 


그러다가 장편소설이 나온다는 얘기에 기대감과 약간의 우려가 함께 했다. 하지만 기대가 더 컸다. 그만큼 믿을만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만 어떠한 내용인지는 몰랐다. 책 소개에서 간략한 글을 보기는 했지만 책 소개글은 일부러 잘 안 읽는 편이기도 해서. 


첫머리부터 뭔가 먹먹했다. 그러한 먹먹함은 끝까지 이어졌다. 역시나 담담하면서도 억눌린 한이 느껴지는 서사들. 등장인물마다 다들 상처와 한을 갖고 있고, 그것들의 원천은 대체로 이어져 있었다. 계급제, 가부장제 사회, 그리고 현대까지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 여성들의 삶.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것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 했고, 어떤 이는 몇 대 맞을 걸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는 걸로 참고 넘어갔으며, 어떤 이는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하지만 저마다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는 일제강점기 수탈기부터 최근까지의 연대기이지만 여러 등장인물이 교차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시간순은 아니다. 하지만 무리 없이 시간순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다.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얘기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명목적인 주인공은 있지만, 그리고 '나'의 기준에서 등장인물들과의 관계가 정해지고 그들의 삶이 이야기되지만 사실 주인공은 결과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야기의 시작이 주인공의 도피로부터 시작되어 현실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삼천, 새비, 할머니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강인함과 영향력이 주인공에게도 전해진 것이기도 하고. (그와 더불어 엄마에게도) 


작품의 시대상과 주인공들의 삶이 그러한 관계로 암울하고 무거운 면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보이는 서로에 대한 우정과 믿음들이 그 무거움을 떠받쳐주었다. 반면 그것을 배신한 등장인물들도 있는데 대체로 남성들이었던 관계로 대척 지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단지 시대가, 사회가 그러했다는 것만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그 역시 현대까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을 페니미즘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을 떠나 작품 그 자체로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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