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책 표지는 일부러 당시의 것으로 찾아봤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었다. 제목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신문의 신간 소개에서 우연히 보게 되어 바로 구입해 버렸다. 그리고 이틀 만에 읽었다. 실은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면서 읽은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지하철에서 나는 그 소설 속의 인물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 뭔가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터인데 줄거리만 요약해서 본 것 같은 그러한 아쉬움이다.
안다. 그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얼마나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는지. 어릴 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여자 (전임강사라는 직책을 달고 있지만)와 공범의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한 최고수의 이야기.
그런데 우리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본성은 그렇지 않고 바뀔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혹은 거울처럼 똑같이 닮은 두 인물이 서로에게서 반영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달라진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그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 늘 동경하는 것이 그 사랑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우리 속에 혹은 우리 밖에 존재한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전반에 흐르는 건 그러한 사랑이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사랑이라는 건 꼭꼭 숨겨져 있다. 혹은 암호처럼. 독자는 무의식 중에 그러한 것을 해독해야 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너무 쉽게 드러나 있어서 의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1997년. 소설의 시점이 되는 그 시기에 우연히도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해 여름방학에 나는 사회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정신 여자 중고등학교. 다른 명칭은 안양소년원이었다. 여자 아이들만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전국에 하나밖에 없었다.
그 두 달 간의 경험은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수업도 수업이었지만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도를 해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의 면담, 교도관들과의 대화, 아이들에 대한 기록들. 그리고 마지막 날의 일들까지.
아이들은 좀 산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런 생활과 외부에서 자신들을 보는 시각에 익숙해져 나 같은 외부인들에게는 적당히 포장된 모습만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본 그 아이들은 밖의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반감을 느꼈던 것은 그 교도관들과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서였다.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보다 더 오래 그들을 보아왔으니 더 잘 알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였을까. 인식의 차이가 느껴졌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설을 읽으며 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지금 만약 다시 그러한 아이들과 혹은 재소자들과 대면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그때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때보다 오히려 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 나로선 그런 고민을 하기 싫어 애써 외면 할런 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회 자체를. 이젠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런 일들은 애써 만들려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공지영 작가에게 기대했을 런 지 모르겠다. 나의 내부에서 그러한 conflict가 발생하는 것을 대신 풀어나가 달라고. 그래서 더 아쉬움을 느꼈을 런 지 모르겠다. 결국 그건 내가 풀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다시 체험하고 다시 느끼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감동적인 혹은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성찰해보도록 재촉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겨져 버렸다.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괴롭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그건 작가 스스로 내린 결론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결론이 아직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지, 사랑의 본질은 어떠한지. 내가 그 '우리들'에 편입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항상 이것만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쪽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지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