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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후기

김성동 <김성동 천자문>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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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YES24의 '그래제본소'에서 처음으로 펀딩에 참여한 책이다. 배너광고의 '천자문'이라기에 호기심에 주문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한석봉 천자문'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보시던 책 같은데 오래돼서인지 표지도 뜯어지고 책도 너덜너덜해졌었다. 한자와 훈, 음이 있고, 네 글자씩 뜻이 적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맨 앞부분 (대략 20자 정도?)과 맨 뒷부분 (8자 정도)만 보고, 나머지 부분은 후루룩 넘겨 보았다. 그래서 중간 부분의 내용은 모른다. 그 뒤로도 천자문을 볼 일은 없었으니까.


천자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은 어릴 때의 그 기억 때문일 런지도 모른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기다린 끝에 책을 받았다. 판형은 생각보다 컸고, 펴서 넘겨 보기에 좋았다. 표지는 얇은 천으로 코팅되어 있어서 다소 한지 같은 느낌이 났다. 다만 그로 인해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는 글씨가 작고 선명하게 인쇄가 안 되어 보기에 불편함이 있었다.


이 책은 20년 만의 복각본이라고 한다. 20년 전이라고 해도 2000년대 들어선 것이니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면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우선 저자인 김성동 작가가 직접 쓴 천자문의 한자들이 나온다. 붓으로 쓴 한자들은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힘차고 미려하다. 솔직히 추사나 석봉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의 개성이 있는 글자체다.


그 한자의 밑에 훈과 음이 달려 있다. 한 페이지에는 8자씩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인쇄된 한자폰트로 다시 적혀 있어서 붓글씨와 인쇄체의 차이점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해석이 나와있다. 나는 한자를 먼저 읽고 내 나름대로 뜻을 해석해본 다음 저자가 해석해 놓은 내용을 보는 식으로 읽었다.


천자문은 4자씩 구를 이룬다고 하지만 8자씩 구를 이루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125페이지에 걸쳐서 천자문의 내용이 소개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 해석을 통해 그 구의 출처, 유래 등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천자문이 그냥 한자들을 배우기 위한 기초 교과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천자문은 단순히 한자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선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책들에서 발췌된 내용들로 가득한 일종의 요약집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는 자연과 세상의 이치, 사람의 도리 등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이 많아 아이들이 서당에서 맨 처음 이 책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각 구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저자의 에세이가 쓰여 있다. 그런데 한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임에도 금방 읽히지 않는다. 저자가 순우리말, 우리말식 한자, 옛말, 충청도 방언 등을 위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왼쪽 페이지 아래에 있는 주석을 보면서 익혔다. 뒤로 갈수록 앞에서 나온 단어들이 나와서인지 주석의 빈도는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천자문을 할아버지께 배웠는데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그것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좀 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더 천천히 읽게 됐고, 내용을 곱씹어볼 수 있는 장점은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저자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전직 승려였음에도 불교에 대해서는 그다지 우호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반항적인 것도 아닌, 그냥 일반인 정도의 성향을 보여주었다.

반면, 민족주의 성향은 강하게 드러났고, 환단고기와 같은 고대사의 쟁점 부분도 사실처럼 썼다. 중국, 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는데 각각의 거부감에 대한 이유는 다르다. 또한 현대 사회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특히 '컴퓨터'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


그 외에도 약간의 정치적인 성향도 보인다.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고, 자본주의는 적대시하며,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입장을 보이지는 않는다.


천자문의 내용이 유교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저자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감이 보이면서도 또 남녀평등에 대해서도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인다. 그 문제에 대해선 미묘하게 해석함으로써 문제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년 전의 상황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가던 시기) 쓰였지만 복간에 맞춰 일부 수정된 부분들도 있기는 하다. (일부 내용이 2021년 기준으로 된 것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20년 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작가의 그러한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은 천자문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천자문의 재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부록의 '천자자전'을 통해 천자문 전체를 복습해볼 수도 있다.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해서 만족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p.s. 김성동 작가님은 이 글을 쓰는 날짜를 기준으로 열흘 전에 돌아가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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