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논' 시리즈라는 소설이 있는 줄 몰랐고, 그걸 원작으로 한 이런 만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YES24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만화였다.
표지의 여자아이 그림을 보고 이 만화가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껴서 구매했다. 알고 보니 이 만화가 나온지도 꽤 됐고, 국내에서 번역본이 나온 것도 10년 정도 됐었다. 중간에 절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에마논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를 그린 것인데 그 제목이 <추억의 에마논>이다. 원작자인 카지오 신지는 원래 시리즈로 낼 생각이 없었는데 단편을 내고 반응이 좋아 에마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계속 쓰게 됐다고 한다.
에마논은 확실히 매력적인 여성이다.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0억 년의 기억을 대물림하는 존재'라는 설정이 없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정상 10대 후반의 여자아이(또는 그와는 다른 연령대로도 나오지만 스포가 되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로 그려지기 때문에 단순히 성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본편에서는 그러한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이름인 에마논은 'emanon'은 단순히 'no name'을 거꾸로 한 것으로서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주인공 남자가 이름이 뭔지 물어보기에 그렇게 답한 것. 하지만 원래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해 왔는지 혹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이후에 계속 그 이름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E.N.이라는 이니셜도 수수께끼다.
13년 뒤의 재회에서 에마논은 그 영구에 가까운 시간을 기억하는 이유에 대해서 답을 찾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에마논은 계속 방랑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갖게 된 이후에 계속 그런 의문이 있었을 텐데 그 시간에 비해 13년의 시간은 짧지 않았는데도 답을 구했다는 게 이해는 안 된다. 뭐 그냥 그렇다고 하자.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됐든 찰나가 될 수밖에 없는 에마논과 그녀를 13년간 마음에 품어온 남자 주인공. 남자에겐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겠지만 그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에마논에겐 결국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러한 경험을 할 수는 없기에 알 수 없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다. 그건 작화가 훌륭하기도 하고 스토리가 간결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겨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여기까지 만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하는 것 같다. 원작을 만화로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그마저도 번역본은 두 권 밖에 나오지 못했는데 <방랑의 에마논>은 절판인 것도 아쉽다.
그래서 미국 아마존에서 킨들 버전으로 2권과 3권을 구매했다. 내가 일본어는 모르기에 그나마 영문으로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3권까지 보고 나니 그제야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2권은 없어도 되는 스토리였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에마논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그리고 어떻게 그 운명이 반복되는지 알려주는 것이니 '에마논 비긴스' 정도일까.
카지오 신지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구매하였다. 단행본으로 나온 것도 있고 국내에는 나오지 않은 것들, 절판된 것들도 있는데 확실히 작화는 맘에 든다. 펜으로 그린 것 같은 섬세한 그림들. 끌어당기는 몰입도.
하지만 제대로 된 완결이 없고, 작품도 드문드문 내니 기다리는 사람들로선 애가 탈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들은 아마 잊고 지내다 보면 어쩌다 한 편씩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기억해 두겠다. 언젠가는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