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추천하기에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우선 이 책은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추천한다. 빨리 읽어나가는 책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어가며 감정을 이입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들도 함께 보면서 읽어야 한다. 이 삽화들은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진다.
다만 일반판 표지가 마치 고무 재질처럼 되어 있어서 읽을 때 느낌이 별로 좋지 않고 먼지가 많이 달라붙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양장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판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등장하는 동물들에 대한 감정이 이입되지만 저자는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풀어갔다. 문장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먹먹함과 담담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 이런 문체는 다소 의외다. 아이들이 그러한 감성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까 싶지만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사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동화는 고전이든 최근 작품이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읽을 때 느끼는 바가 다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게 되지만, 어느 정도 세상을 알게 된 어른들은 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작가의 생각들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작가의 생각은 무엇일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흰바위코뿔소 노던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펭귄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 중에 이름이 있는 것은 딱 네 마리뿐이다. 흰바위코뿔소인 노던과 앙가부, 그리고 펭귄인 윔부와 치쿠. 그러나 이 이름들은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지어준 것이다. 노던을 제외하곤 모두 동물원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노던도 동물원에 오게 되면서 갖게 된 이름이다.
동물들은 자연과 동물원이라는 이원 된 세계가 있고, 인간들도 선한 이들과 악한 이들이라는 이분적 구분이 있다. 물론 단순히 그렇게 나누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명확한 악인들은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동물들을 죽였다.
노던은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일생을 보내고 있다. 인간들로 인한 트라우마로 악몽을 꾸며 긴긴밤을 보내고, 치쿠와 함께 여행하며 또 힘든 긴긴밤을 보내고, 알에서 태어난 펭귄과 함께 여행하며 긴긴밤을 보낸다.
그들에게 밤이란 두려움과 불안의 시간이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바다에 가는 것. 사실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도 모른 채 그냥 막연하게 희망을 찾아간다. 더욱이 노던에게는 그것조차 희망이 아니다. 어쩌다가 자신의 운명에 끼어든 펭귄들 때문일 뿐.
코뿔소와 펭귄의 조합은 너무 낯설다. 그게 동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러나 초반의 코끼리와 코뿔소의 조합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낯선 조합에서 유대감을 느끼는 건, 종을 초월한 믿음과 사랑, 우정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노던을, 치쿠를, 이름 없는 아기 펭귄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다.
아이들도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단순히 나쁘다, 슬프다는 그러한 감정보다 좀 더 복잡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물어봐야겠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