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에서 제공했던 웹드라마 <안나>의 원작이 이 작품이라는 얘기를 본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본 적은 없다) 관심은 있었지만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그저 그런 소설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굳이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파에 이 책이 올라오니 왠지 관심이 가서 챌린지에 참여하며 읽게 되었다.
이유미는 자신이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두려움과 동시에 흥분을 느꼈다. 자신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다시없을 기회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다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면 더 좋다. pp.114
어느 정도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이유미가 계속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그러면서도 감당할 수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멈추었으면 싶었다. 작중에서는 합리화하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리화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단지 이유미라는 한 인물에 대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인 주인공(화자), 그리고 진이라는 또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도 독립적으로, 병렬적으로 그려진다. 개별적인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어찌 보면 비슷한 점들이 있다. 마치 하나의 가지에서 시작되어 분기되어 나간 또 다른 가지들처럼.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다양한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좀 더 노력해볼 수도 있었다. 시간을 두고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인생의 과정이었다고 추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 모든 삶의 가능성을 단번에 잘라내고, 차라리 민둥산처럼 헐벗는 쪽을 택했다. 삶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것 말고는 처음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다시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p.234
그래서 제목이 '친밀한 이방인'인 것일까? 이방인이지만 친밀해 보이는...
이유미와 진의 이야기는 맞물리는 부분이 있지만 주인공은 관찰자적 입장에서 이유미의 삶을 추적할 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이유미와 주인공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말미에서 그럴 가능성을 조금 보여주긴 했지만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그 소설을 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소설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퍼 담기에 급급한 졸작이었다. 하지만 그 미숙한 감상의 이면에는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검은 표지에 새겨진 새하얀 나선의 빛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잠긴 배 위에 매달린 돛의 음영, 혹은 버려진 책을 집어 든 단 한 사람의 공감, 끝없이 실패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제로의 출발선이었다. pp.238
이 소설에는 반전이 있다. 그 반전에 한 방 먹은듯한 기분이 드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랬고.
꽤 재미있어서 한 번에 읽어 내려갔지만, 다음에는 좀 더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