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파를 통해 <쇼코의 미소>를 6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최은영 작가의 첫 단편집이고, 내가 최은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작품집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의 작품들에 매료되었다.
그 뒤로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 애쓰지 않아도>를 모두 읽어보았기에 이젠 최은영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읽은 < 쇼코의 미소>는 또 새로웠다. 그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도 무언가 놓친 듯한 것들도 눈에 들어왔고, 비로소 이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pp.7/314 (전자책 기준)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 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pp.35/314 (전자책 기준)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p.96/314 (전자책 기준)
최은영 작가는 작품들에서 관계와 소통, 감정의 전달에 중점을 둔다.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다. 또한 서사의 힘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보편적인 일들을 그렇게 담담하게 그려내었지만 그렇다고 소설로서의 재미가 부족하진 않다. 조미가 적당한, 담백한 맛이다. 그래서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단순히 문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친한 친구의 이야기 같은 진솔함. 그의 작품들이 다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첫 작품집인 <쇼코의 미소>에 더 정이 가는 것은 그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는 같은 사람의 조금씩 다른 면들을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pp.99/314 (전자책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