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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12. 2022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정보는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고,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영국의 음악가 마일스 킹턴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


살면서 가끔은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답을 구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앞서 철학자들도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애쓴 바 있기에 그들의 글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치 문제지 뒤에 있는 모범답안(정답이라고는 하지 않겠다)을 힐끗 훔쳐보는 것과 같다.


철학이 그러한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살면서 그런 신경조차 쓰기가 쉽진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철학 역시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살아가는데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반대로, 철학책 좀 읽고 아는 척 좀 한다고 그러한 대부분의 부류들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사성의 범주로 본다면 소수의 철학적 대가를 제외한다면 범인들은 대체로 비슷한 범위 내에 있을 테니 말이다.


나도 철학을 좋아하고 철학책도 자주 읽지만 그러한 철학자의 철학이 집대성된 책들은 여전히 읽기에 버겁다. 철학의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물가에서 놀면서 그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깊이를, 심연을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늘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여전히 철학책들을 읽는다.


우리에겐 늘 지혜가 필요하지만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열다섯 살에게 중요한 ‘어떻게’ 질문과 서른다섯 살, 또는 일흔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은 같지 않다. 철학은 각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에 많은 이들이 읽었다는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특이한 구성의 철학책이다. 그는 NPR이라는 라디오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철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철학책 및 잡지들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러한 관심이 이 책을 쓰게 한 계기가 됐다.


이 책은 그가 세계 곳곳에서 열차로 (혹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쓴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 열차 여행에서 그 글들을 썼는지 아니면 그 상황을 가정하면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실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필력이 좋아서, 유머 감각이 좋아서 그의 글에 몰입하게 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새벽, 정오, 황혼 등 3부로 나누어 구성을 하였고, 각각 4~5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이 알려진 철학자도 있지만 철학자인가 싶은 사람도 있고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세이 쇼나곤처럼 생소한 사람도 등장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양과 서양의 철학자들을 아우른다.


그는 각각의 챕터에서는 그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철학적 사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직접 경험해보고자 한다. 또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남긴 것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 본다. 그러한 과정은 철학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 고리타분한 철학책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다소 함축되고 때론 한 단어로 축약되어 버리더라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료했다. 그래서 이해가 더 쉬웠다고 하겠다. 또한 '~하는 법'과 같이 우리의 삶에 적용해보면 좋을 방법들도 함께 제시해준다.


특히 내게 다가왔던 것은 3부였다. 내가 인생의 황혼기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고 저자 또한 그러지만 그는 노년의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노년의 최종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물길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 카이로스의 지혜. 모든 것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심지어 물러나는 것에도.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고민을 해볼 수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의 답을 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 무리일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 책의 부제처럼 '철학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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