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광으로 알려진 빌 게이츠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습니까?"
그러자 빌 게이츠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는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빌 게이츠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1년에 수 백 권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습득하는 능력도 좋은 편이다. 가끔 책에 빌 게이츠의 추천 책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수 백 권의 책 중에 상당수가 아마 그의 추천 책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누가 내게 저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읽은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해서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도 독서를 좋아하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해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 적게는 수 십 권, 많게는 200권 가까이 책을 읽기도 한다. 주제도 문학부터 철학, 역사,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만화 등 특별히 가리지 않는다. 특정한 분야를 좀 더 선호하는 것을 있기는 하지만 가급적 그러한 쏠림을 피하고자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특히 책의 내용이 난해하면 더 그렇다.
나는 꼼꼼하게 정독하기보다는 좀 빨리 읽어나가는 편이다. 책을 읽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내게 여유시간은 늘 기회비용을 수반한다. 그 시간에 책을 읽을지 아니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선택을 해야 하니.
꼼꼼히 읽어도,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고, 그걸 기록해 두거나 다른 매체를 함께 해야 될 텐데 그러기엔 빨리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더 크다. 그나마 독서기록을 남기면 조금 낫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독서기록을 남기는 책은 10%도 채 못 되는 듯하니.
게다가 여러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가는 병렬 독서를 한다. 보통 두세 권, 많게는 대여섯 권의 책을 같이 읽어나간다. 책의 내용이 헷갈리거나 흐름이 끊기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분야가 다른 책들 또는 내용이 다른 책들이다 보니 별로 그럴 일은 없다.
대신, 빨리 읽어도 괜찮은 부분과 천천히 읽어야 할 부분은 구분이 돼서, 소위 '콘텐츠 적응형 독서방식'을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내가 만든 용어지만, 효율적으로 독서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책 전체의 간략한 내용과 논조, 흐름, 부분 부분 기억할만한 것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빨리 훑어본다. 비슷한 부류의 책을 읽다 보면 뭔가 순환되는 느낌도 있는데, 종종 이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면서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마치 끊어져 있던 점들이 연결되는 것처럼.
내게 독서는 힐링의 시간이자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간이다. 이 시간만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쓰고 싶고 아무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 나를 독방에 넣어두더라도 책만 준다면 며칠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책이어도 상관없다.
누군가 내게 독서를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면 기꺼이 받겠다. 다만 그러한 대가로 뭘 가져가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악마가 내게 그러한 거래를 하자고 한다면 고민을 많이 해보겠지?)
p.s. 나는 이공계 출신이라 사실 뼛속까지 이공계다. 평소에는 업무상 학술적인 논문을 읽고 또 논문을 쓴다. 독서는 그러한 일들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독서를 하고 이러한 글을 쓸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더 독서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