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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14. 2022

책과 종이

국내에서 판매되는 책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표지 디자인부터 세련되고, 본문의 종이질도 좋다. 거기에 양장본이라면 더더욱. (나는 양장본을 좋아한다)


인쇄에 사용되는 종이는 종류가 많다. 일단 코팅이 된 종이와 코팅이 되지 않은 종이로 나뉘고, 각각의 종류도 다양하다. 출판사에서는 각각의 책에 적합한 종이를 선택하여 책을 만들게 된다. 특히 컬러가 많이 들어간 책의 경우에는 종이 선택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


종이도 점점 더 고급화되다 보니 종이를 만드는 기술도 더 복잡해지고 첨가되는 부가재의 종류도 많아졌다. 종이에는 돌가루도 들어가는데 돌가루가 들어가면 내구성이 더 좋아지고 매끄러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종이가 좀 더 무거워진다. (책에서 종이 냄새 대신 돌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하지만 책은 종이로 만든다. 그러니 책이 만들어지는 만큼 종이도 소모되고, 나무도 그만큼 사라진다.


그런데 국내에서 1년에 사용되는 종이의 양은 얼마나 될까? 사용량에 대한 최근 통계는 못 찾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종이제품 생산량이 1,200만 톤이라고 한다. 이중 책 등 인쇄물 (혹은 필기용 노트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비율은 1/4 정도의 비율이다. 신문을 포함하면 1/3 정도가 된다. (출처: 한국제지연합회)


사실 어느 정도 양인지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종이 생산을 위해 해마다 엄청난 수의 나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종이는 재활용 비율이 높아서 약 80~90% 정도가 재활용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외국에서 꽤 많은 펄프를 수입하고 있다. 그러니 인구가 훨씬 더 많은 국가들은 종이 소모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로 전자책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전자책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국가는 아마도 미국과 중국일 것이다. 이들은 각각 3억 명, 14억 명이 넘는 인구가 있기에 독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만 넘겨도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종이책을 만들어 판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가 소모될 것이다. 


미국은 아마존이라는 걸출한 기업이 있기에 일찌감치 전자책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중국은 전자책 서비스를 하는 곳도 많고 특히 이북 리더의 시장도 크다. 어쩌면 종이의 소모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일 수도 있겠다. 전자책뿐만 아니라 IT제품 시장이 가장 큰 곳도 중국일 것이다.


국내외에서 사용되는 이북 리더의 대부분이 중국이나 대만제품인 것은 단지 우리가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가격 경쟁력에서도 많이 밀렸고, 또 제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밀렸다. 그러니 중국산 제품을 OEM으로 해서 국내 서점용으로 커스터마이징 해서 판매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제품들을 직구나 국내 정발 형태로 많이 구입하고 있기도 하다.




전자책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도 미국은 이미 책을 출판할 때 고급 양장본과 무선본, 페이퍼백 등 다양한 형태로 내고 있었다. 각각의 수요가 다르기 때문인데 가장 저렴한 페이퍼백은 나도 원서로 종종 하기도 구매하기도 했다. 미국은 책값도 비싸서 그런 페이퍼백이 책값 부담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는 그렇게 여러 가지로 출판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양장본과 무선본 정도 구분해서 나오긴 한다. 페이퍼백은 수요가 거의 없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국내 도서의 페이퍼백은 구입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질 좋은 종이들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러니 애초에 출판사들도 페이퍼백은 고려를 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책값에서 종이값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고급 종이를 그렇게 아낌없이 쓰려는 걸까?


독서도 감소하고, 종이책에 대한 수요도 줄다 보니 책도 마케팅이 더 중요해졌고 더 눈에 띄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때론 전자책으로 읽고 종이책을 실제로 보게 되면 놀라는 경우도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판형과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리커버도 유행인데 잘 팔리는 책이든 잘 안 팔리는 책이든 리커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표지를 다시 만드는 것은 이전에도 자주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유행처럼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은 별로인데 외형으로 승부를 보려는 책도 많은 것 같다. 마치 맛없는 포도주나 양주를 모양만 특이하고 그럴싸한 병에 담아 놓은 것처럼. 그런 것들도 다 마케팅의 일환이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제품의 질이 아닌가.




전자책의 경우엔 종이값도 들지 않고 디자인 요소보다는 (물론 전자출판도 편집이 중요하지만) 책 내용 자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물론 종이책에서의 관심이 전자책으로 이어져서 판매가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출판비용이 덜 든다는 점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책의 내용 자체에 더 집중할 수도 있는 반면,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을 디지털 형태로 공급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여나 구독 서비스의 책 중에 그런 것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러한 것들은 직접 읽기 전까진 알 수 없으니 걸러내기가 어렵다. 하긴, 그런 건 종이책도 마찬가지긴 할 것 같다.


국내의 전자책 시장은 여전히 작지만 꾸준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다만 그 성장률이 너무 미미하다. 전자책이 책의 미래이기는 하겠지만 과도기인지 침체기인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전자책과 종이책 양쪽 모두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종이를, 나무를 아끼는 측면에서는 전자책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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