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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31. 2022

안중근 <안응칠 역사>, <동양평화론>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3주년 기념일이기도 했고, 이전에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에서도 언급된 바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읽어보고자 했다. 여러 책이 나와 있었지만 나는 하나교육연구소라는 곳에서 만든 통합본으로 읽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그러한 내용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두 책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옥중에서 작성한 것이며, <안응칠 역사>를 먼저 쓰고 <동양평화론>을 이어서 쓰려고 했지만 사형이 집행되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원래 <동양평화론>을 마칠 때까지는 사형집행을 미뤄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항소를 포기했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못한 셈이다.


'안응칠'은 안중근 의사의 아명이며, 가슴에서 배까지 일곱 개의 점이 마치 북두칠성과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 이름을 하얼빈에서 체포 후 조사, 재판을 받을 때까지 사용했다. 실제로 기 기록들에는 모두 '안응칠'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서전의 제목마저 <안응칠 역사>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근'이라는 이름이 '무겁게 뿌리내리고 있으라'는 의미였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국내외로 떠돌아다녔던 자신에 대해 반어적으로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끝까지 인간 안응칠로 남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이 책에서는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어린 시절, 청년기, 독립 운동기, 하얼빈 의거 후 체포되어 빌렘 신부에게 성사를 받을 때까지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책이 중요한 사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원본은 현재 소실되었다. 어디에 있기는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일본인들에 의한 필사본만 전해져 오다 보니 그 내용이 원본과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중요했다. 여러 필사본과 출판본을 비교하여 펴낸 비판 정본도 간행된 바 있지만, 학술적인 연구가 아닌 일반인 수준에서는 이 정도의 책만 해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안응칠 역사>나 <동양평화론>은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의 글들, 유묵들은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새삼스럽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한글로 된 기록은 거의 없다는 점은 의아하다. 사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가서 보기 전까지는 당연히 모두 한글로 되어 있는 줄 알았으니까.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안응칠 역사> 소개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안응칠 역사>의 필사본 (복제품)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일화와 자신이 했던 연설문, 기고문 등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자신의 신념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러한 글들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활동, 고난 등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을 추켜올리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전기도 많이 나와있지만 아무래도 자서전은 그러한 글들보다 울림이 더 크다. 길지도 않은 글이라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동양평화론>은 앞서 말한 대로 미완성이다. 원래는 서론, 전감, 현상, 복선, 문답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서론, 전감까지만 집필한 상태이다. 이 책 역시 원본은 소실되었고, 필사본만 전해진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동양평화론> 소개글


여기까지의 내용만 봐도 대략 어떤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려고 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이상주의자와 같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러일전쟁에 대해서는 일본에 대한 편을 들고 있다. 그는 인종간 대립에서 동양인이 협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았다. 러일전쟁 당시 청국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길을 내어준 것은 (사실상 그럴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러한 도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한다고 한 내용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청국과 대한제국에 대하여 배신을 하였으며, 지금이라도 일본은 반성하고 한, 청, 일 삼국이 협력하여 동양의 평화를 이루자는 것이 요지다. 


여기까지만 나와 있고 그 책에서 구상했던 구체적인 내용들은 일본인 검사 누구였는지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을 통해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무위키에서 참조함)


1. 뤼순을 중립지대로 하여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협력을 위한 기구를 설치할 것.

2.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공동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사용할 것.

3.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이 연합군을 창설하여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공동으로 맞설 것.

4. 대한제국과 청은 일본제국의 지도 아래 경제 개발에 힘쓸 것.

5.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황제가 로마 교황의 중재 아래,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 관계를 맺을 것


마치 EU와 같은 국가 간 협력체를 구상했던 것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공영권'에 대항하여 그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및 중국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내고 있던 일본에게 그러한 것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특히나 상당 부분을 일본의 태도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은 아쉽다. 


결국 그의 이상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지만 그의 이상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 당시 유럽과 미국 등 열강에 맞서 한중일 삼국이 협력하여 이겨내자는 것은 방향은 옳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그러한 관계는 사실 수천 년간의 역사에서 갈등을 겪고 반목하였던 것이라 그처럼 쉽게 풀어질 수는 없다. 그러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고. 비단 한중일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정세 자체가 늘 살얼음판이지만. 


안중근 의사가 이 책을 완성했더라면 좀 더 명확하게 자세하게 그의 주장을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이 정도라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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