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집마다 소위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책 한 두 권씩은 있을 듯하다. 책 두께도 두께지만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아 사놓고 읽지 않는 책들을 얘기한다. 인문학, 과학, 교양서적들 중에 그런 것들이 많은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대부분 책 제목이라도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지만 다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이 책을 10여 년 전에 보급형으로 나온 특별판으로 구매해서 읽었고, 최근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특별판은 페이퍼백처럼 나온 것이고 화보가 많이 빠져있다. 그래도 컬러 삽지가 꽤 들어가 있어서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이 책은 나온 지 이미 40년이 넘고 (초판이 1980년에 나왔음), 칼 세이건이 1996년에 사망하였으므로 그 이후에 저자에 의한 개정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1980년대까지의 지견이 주를 이루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올드하고 잘못된 내용도 있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명확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판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지금 기준에서 틀렸다고 한들, 그것마저도 나중에 가면 또 바뀔 수가 있는 부분이라서)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천문 분야의 과학서적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그런 목적이라면 천문 분야의 최신지견을 담은 좋은 책들도 많이 나와 있으니까.
원래 이 책은 1980년에 BBC에서 방영된 동명의 다큐멘터리인 <코스모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도 칼 세이건은 해설을 맡았다. 워낙 오래전이라 그 방영작을 본 적은 없지만 유튜브 등에서는 그 영상을 일부나마 볼 수가 있어 책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리메이크 작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칼 세이건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오리지널이 더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리메리크보다는 각 작품들을 별개의 시즌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서문에서도 얘기했다시피 TV 다큐멘터리와 이 책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보적인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TV와 책 모두를 본 사람들에겐 이해하고 느끼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칼 세이건은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에도 관여했고, 이를 통해 과학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30여 권의 과학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혹자는 그가 전문성보다는 스타성 때문에 인기 있었을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나의 관점에서 그가 그러한 혹평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학자이기도 했지만, 과연 학자는 얼마만큼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걸까?
사실 현재의 과학자들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알지 못하고, 자기 전문분야 이외에는 기초적인 수준인 경우도 많다. 그보다는 통섭을 가지는 사람, 대중에게 과학을 더 쉽고 친근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뛰어난 학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비교는 약간 다르지만 리처드 파인만 교수 같은 경우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책은 과학서이기도 하지만 철학서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그것을 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과 태양계, 은하계, 우주로 확장되어 가는 관계를 그린 것이다. 핵심적인 메시지는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라는 것.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으며,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간축과 공간 축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 축척은 가변적이지만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다. 차례를 나누어 놓은 것을 보면 서서히 코스모스의 세계로 들어가 시간과 공간의 여행을 한 다음 다시 현재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여정처럼 보인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일부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피타고라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질서'를 의미하고, '혼돈(카오스)'의 반대되는 말이다. 고대 사람들은 이 우주가 그렇게 질서를 유지한다고 믿었다. 과연 그 질서는 어떠한 질서일까? 만물이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의미일까? 피타고라스로서는 이 우주가 당연히 그러한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고대인들의 대부분은 우주에 대해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다양한 신화를 갖고 있었지만 에라스토테네스처럼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사람도 있었고, 아리스타르코스처럼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소실과 함께 사라져 버린 지식들이 아쉽고, 이오니아 과학자들의 유산이 이어지지 못하고 중세시대를 맞이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잃어버린 1000년이랄까.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아득한 시간, 광활한 공간, 그것을 우리의 인지의 범위 내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는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적었다. 그리고 문장도 좋아서 재독 할 때는 그러한 문장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내용은 잊어버려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생각보다 읽기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입견 때문에 지레 겁먹는 것일 뿐, 차근하게 읽어나가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책이다.
이 우주에서 지구는 아직까지는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알려진 유일한, 외로운 행성이다. 하지만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어쩌면 지구가 사라지기 전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생명체와 조우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가정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과학기술은 계속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40여 년 전과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가속화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동기는 무엇일까? 그 속에는 순수한 탐구욕도 있겠지만, 경제적,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또 경쟁을 하게 하고, 그 결과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칼 세이건을 책의 말미에서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과연 이 지구를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의 과욕이 이 지구를 파멸로 이끌지 않을까?
어찌 보면 이 우주에서 지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에 의해 지구가 파괴되고 태양계에서, 우주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우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까. 단지 멸망하는 것은 인류일 뿐,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는 존속할 가능성이 더 크고, 오히려 그게 지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인간이 지구가 중요하다는 인식과 파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니 그가 그런 경고로 마무리하는 것은 진심 어린 충고였을 것이다. 특히나 당시에는 아직 냉전시대였으니 더 그랬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