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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Nov 16. 2022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 어떤 순서로 읽을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다소 논란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충분히 수상할 만했다는 평가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서 자세히 적어볼 예정이지만, 우선은 그의 작품들을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약 30여 편이 있는데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국내에도 팬층이 있어 다양한 출판사에서 번역본이 나와 있으며 (물론 겹치지는 않는다) 전자책으로도 다수 나와 있다.


그러나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지, 딱 한 권만 읽는다면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일반적인 문학작품들은 스토리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같은 작가의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도 사실 무방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경우에는 모두 자전적인 작품들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의 가정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러한 작품들을 먼저 읽는 것이 좋겠다.




우선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할지를 알아보기 위해 갈리마르 콰르토 총서를 참고했다. 아니 에르노는 지난 2011년에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콰르토 총서에 <삶을 쓰다(Écrire la vie)>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는데, 그 목차를 보면 그가 원했던 순서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정보나 목차를 찾기 어려웠고, 책의 앞뒷면이 나온 이미지를 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뒷면 이미지에 수록 순서가 나와 있었다.



한 권으로 된 이 책에는 소설 12편과 산문, 기고글 1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중 산문과 기고글들은 따로 모아서 나중에 <카사노바 호텔>로 다시 출간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13권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저기에서 <<>>로 표시된 글들이 산문, 기고글들이다.


이 목록을 국내 번역본의 제목과 대응해보면 다음과 같다. (산문, 기고글의 경우에는 <카사노바 호텔>에 수록된 제목으로 하였으며, 편의상 뒷부분에 따로 모았다)


<Les armoires vides> 빈 옷장

<La honte> 부끄러움

<L'événement> 사건

<La femme gelée> 얼어붙은 여자

<La place> 남자의 자리

<Journal du dehors> 바깥 일기

<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Une femme> 한 여자

<Passion simple> 단순한 열정

<Se perdre> 탐닉

<L'occupation> 집착

<Les années> 세월


산문 및 기고글들 (후에 단행본 <카사노바 호텔>에 동일한 순서로 수록됨)

- Hôtel Casanova 카사노바 호텔 

- Histoires 이야기들

- Retours 귀환

- Visite 방문

- Littérature et politique 문학과 정치 

- Cesare Pavese 체사레 파베세

- Images, questions d'URSS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이미지와 물음

- Leipzig, passage 라이프치히, 이행

- De l'autre côté du siècle 금세기 저편에서

- Le chagrin 슬픔

- L'homme de la poste, à C. C 소재 우체국의 남자 

- La fête 축하연


이 순서는 작품의 발표 순서라기보다는 작가 본인의 삶의 시간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만약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읽는다면 저 순서가 좋을 듯하다.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여력이 되면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남자의 자리>, <한 여자>, <부끄러움>, <사건> 순으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효과로 <단순한 열정>이 가장 많이 읽힌 것 같다.  그 밖에 <탐닉>, <집착>, <카사노바 호텔> 등 주로 문학동네에서 나온 작품들이 많이 읽힌 것 같고, 1984Books에서 나온 작품들인 <남자의 자리>, <한 여자>, <세월>, <빈 옷장> 등도 꽤 읽힌 듯했다.


그러나 <단순한 열정>, <탐닉>, <집착> 등을 통해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거나 혹은 편견을 갖게 될 우려가 있다. 나도 그러한 순서로 작품들을 접하다 보니 '이 작가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라는 의문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점차 수긍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볼 수 있다면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그 작품들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될 수 있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한 두권만 읽는다고 하면 어느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부끄러움>과 <카사노바 호텔>, <세월>을 권하고 싶다. 나도 아직 저 작품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라서 더 나은 선택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기회가 되는대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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